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선고로 정국이 격랑에 휩싸였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사법 살인’ ‘법 기술자들의 사악한 입틀막’ 등 격앙된 말들이 오간다. ‘비명계 움직이면 죽이겠다’로 상징된 민주당 내부 균열의 살벌한 조짐은 위태하게까지 느껴진다. 때를 만난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을 입에 올리고 ‘재판지연방지 TF’를 꾸리는 등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정국 반전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사생결단의 정치가 연말 정국을 달구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 1심 형량이 유지되면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무거운 형량이다. 정치인의 선거 중 허위사실 공표에 징역형이 선고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공직선거법이 낙선자를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서도 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내려진 발언들은 이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며 한 것이다. 양형에 대한 불만에 앞서 재판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부터 느끼는 게 마땅하다.
정부와 여당이라고 사정이 크게 나을 리 없다. 명태균 씨 사태로 촉발된 김건희 여사 공천·국정 개입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 공천 개입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명쾌하게 정리하고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국정 발목을 잡을 사안이다. 혹여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대충 덮고 가자고 하는 날에는 화를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여당이 혁신할 기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고조될수록 민주당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서로서로 죽이는 게임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25일은 이 대표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일이다. 진행 중인 재판만 4건인데 검찰은 법카 사적 유용으로 이 대표를 추가 기소하며 불난 민주당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윤 대통령 국정 후반기 정국의 상수로 자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 미래에 먹구름이 드리운 엄중한 시기를 정쟁으로 날을 새우며 보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만 위대하게 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공언은 대미 수출에 목을 매는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예고한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성장잠재력이 추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망국적 수도권 집중과 초저출생으로 상징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외 충격이 아니더라도 안으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총력을 동원해서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와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윤 정부 출범 초만 해도 서울과 부산의 두 바퀴로 국가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며 균형발전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다. 그 모멘텀을 위해 월드엑스포 유치에 국가 역량을 총집결했지만 좌초했다. 대안으로 내세웠던 게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인데 이제 극단적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표류 중이다.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게 1년 전이니 윤 대통령이 글로벌 허브도시를 공언한 지도 꼭 1년인데 특별법은 21대와 22대 국회를 이어오며 잠자는 중이다.
그나마 중앙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복합리조트’가 빠지는 등 각종 특례 조항에 대한 수정이 거듭돼 실효성 논란까지 더해진 마당이다. 벼랑 끝에 선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파격적 규제 혁파가 필요한데 중앙 관료들의 견제에 특별법의 칼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래도 글로벌 허브도시의 토대라도 놓자며 시민들이 서명운동까지 해 가며 법 통과에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 전남특별자치도법, 전북특별자치도법, 경기북부특별자치도법 등 지자체마다 유사한 특별법을 발의하며 부산의 뒷덜미를 잡는다. 이쯤 되면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조성이 지역별 형평성만 고려해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판교형 테크노밸리를 만들겠다며 부산, 울산, 대구, 광주, 대전에 골고루 도심융합특구를 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하겠다는 것은 때론 아무것도 제대로 안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혁신의 출발지로 부산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의 의지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정치권은 발목만 잡는다. 결국 기댈 곳은 부산 정치권인데 사생결단의 결의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민의힘 책임이 크지만 부산 민주당의 존재감 부재도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균형발전의 시계추를 되돌리기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