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2004) 중에서
사랑의 본질은 고고한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달’ 수 있을 때 사랑은 시작된다. 그 사랑은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기 때문에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달’아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로 실현된다. 그때 사랑의 행위로서 ‘내 몸을 비워 날아가는 일’은 생의 의미를 지고한 것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모습은 현실에서 구체화되기 어렵다. 물질적 삶의 중력에 의해 사랑의 실체는 땅에 떨어지고 무참히 짓밟히는 경우가 많다. 내 사랑의 본질이 비참하게 훼손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맑은 영혼의 존재는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작심한다. 누군가 이 사랑을 모욕하여 사랑의 정수인 내 ‘모가지’를 ‘참수한다 해도’ 그 본의는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자 지엄한 결기다. 하여 사랑도 목숨을 거는 일인 것이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