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에 재계는 투자를 축소하는 등 ‘소극경영’ 모드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수출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경영여건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SK, 현대차, LG, 한화, 롯데 등 주요 기업들은 내년도 사업계획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맞춰 경영전략을 짜놓았지만 탄핵 정국에 맞춰 투자규모와 전략에 대한 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별로 이미 내년도 국가별, 사업별 전략을 짜놓았고, 탄핵에 대비한 수차례 비상전략회의를 통해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대응 전략을 준비해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특히 해외 주요 국가들과의 계약건이나 글로벌 기업들과 진행중인 프로젝트건에 변동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우리 정부는 당장 다음 달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와의 각종 협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한미 재계 간 민간 교류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 10일(현지시간) 한국경제인협회는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미국 상의와 공동으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열고 한국과 미국 경제계의 긴밀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날 양국 경제계는 첨단산업의 지속적 협력을 위한 정책 안정성을 촉구하고 소형모듈원전(SMR), 조선업 등 협력이 유망한 주요 분야에서 투자‧공급망 협력을 촉진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계 분위기와는 달리 정부 차원의 협력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국무역협회는 내년도 한국 수출을 사실상 횡보상태인 1.8% 성장으로 전망하며,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수출 성장률이 이 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수많은 친기업, 재건축 규제 축소, 상속세 감면 등의 정책도 당분간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법인세 감면과 상속세 인하, 투자 확대를 위한 세금 감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도 추진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법인세 감면은 정부 스스로 포기한 상황이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를 낮추는 상속세법 개정안도 지난 10일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또한 직접 보조금 지원을 명시한 ‘반도체 특별법’도 지난 9일 논의하려다 소위조차 열리지 못하는 등 계엄 사태로 더이상 추진이 어려운 분위기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설립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지원하게 돼 투자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재계는 그나마 탄핵가결로 민주노총의 부분 파업이 확산될 가능성이 낮아진 점이 위안거리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 5~6일 이틀간 부분파업에 나선 데 이어 11일에는 총파업을 강행했다. 금속노조는 오는 19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추후 투쟁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항공과 여행업계는 지난번 계엄 사태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국의 한국여행 주의보와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탄핵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고환율에 그동안 한국이 내세운 안전한 여행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국 여행 기피와 이로인한 실적감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