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꼽히는 ‘무안 제주항공 참사’ 발생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사고 유가족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소방대원들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TV 화면이나 SNS 등에서 반복적으로 사고 참상이 전해지면서 일반 시민들도 “마치 내가 겪은 일 같다”고 토로한다. 이번 참사가 사회 전반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번져가는 분위기다.
3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는 여전히 유족들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계속됐다. 무거운 분위기 속 사흘 내내 유족들을 돕던 자원봉사자와 공항 직원들의 얼굴에도 표정이 사라졌다. 공항 직원 박 모(38) 씨는 “가족을 잃고 괴로워하는 유족 울음소리를 내내 들으면서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집에 가도 현장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며 “나도 모르게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 역시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영순(65·목포) 씨는 불안감에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했다. 그는 “3주 전에 무안공항에서 대만을 다녀왔는데 소식을 듣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전했다. 목포의용소방대원 정사실(61) 씨는 “집에서 여객기 추락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가만 있자니 하도 답답해 공항에 왔다”며 “목포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헀다.
처참한 현장을 직접 겪은 소방대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희생자 수습을 맡은 한 소방대원은 “현장이 워낙 끔찍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참사라는 얘기를 하고, 현장에서 벗어난 뒤에도 계속 장면이 떠오른다고 한다”며 “세월호 현장에 나섰던 동료들은 그때 일을 떠올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유가족 심리 지원에 나선 한 소방대원도 “공항에서 심리 지원을 진행 중인데, 보기만 해도 감히 고통을 헤아릴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라며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제일 괴롭다”고 밝혔다.
일반인들 역시 집단적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모습이다. 지난달 30일 분향소를 찾은 시민 최 모(58·광주) 씨는 “뉴스에서 여객기 추락 장면과 사망 소식이 하도 많이 나오다 보니 TV를 꺼도 머릿속에 계속 장면이 맴돌았다”며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보니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이라 어제는 설거지 하다가 손이 떨리더라”고 말했다.
SNS 등에서도 착잡한 마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고 영상에는 “내려오는 순간에는 살아있었을 텐데… 안타까워서 보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 “너무 많이 울어 우울하다”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하면 공포스럽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전문가들은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적 증상을 정상적인 반응임을 인지하고 자극으로부터 최대한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의 심리 응급 처치를 맡고 있는 통합심리지원단 관계자는 “대참사로 인한 트라우마적 반응으로는 악몽, 불면, 우울, 분노 등이 있는데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도 지속적으로 사건 영상 등에 노출되다 보면 2차 회상을 겪어 스트레스를 호소할 수 있다”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임을 인지하고 사고 관련 자극적인 장면으로부터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증상이 이어질 경우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남 무안=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