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프런티어] 온몸으로 익힌 ‘이정호표 관현악’, 악단들도 탐낸다

입력 : 2025-02-11 16:47:09 수정 : 2025-02-11 20: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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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이정호 국악작곡가

시립국악단 단원에서 교수로
국악관현악 작곡 특히 뛰어나
한 달에 한두 편 ‘다작’ 놀라워
“전통 유산 위에 새로움 모색”

국악작곡가 이정호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이정호 제공 국악작곡가 이정호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이정호 제공

이정호(43·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작곡가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고 놀라웠다.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저렇게 빨리, 혹은 많은 창작국악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의아해서다. 그가 최근 몇 년간 발표한 위촉 초연곡만 보더라도 2024년 9곡, 2023년 7곡, 2022년 15곡, 2021년 10곡, 2020년 8곡, 2019년 15곡 등이다. 최소 한 달에 한 편, 혹은 두 편을 써냈다. 독주곡, 중주곡도 있지만, 협주곡과 관현악곡이 대다수다. 초연 후엔 여러 악단에서 앞다투어 탐낸다. 국악관현악 전문가라는 말도 그렇게 해서 붙었다.

지난 1월 1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린 제16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커튼콜 모습. 이날 김성국이 지휘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정호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 등 5곡을 선보였다. 이정호 제공 지난 1월 1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린 제16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커튼콜 모습. 이날 김성국이 지휘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정호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 등 5곡을 선보였다. 이정호 제공
지난 1월 1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린 제16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모습. 이날 김성국이 지휘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정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 등 5곡을 선보였다. 이정호 제공 지난 1월 1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린 제16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모습. 이날 김성국이 지휘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정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 등 5곡을 선보였다. 이정호 제공

다작일 뿐 아니라 성과도 꽤 있다. 창작국악관현악공모전 수상(2006)을 필두로, 제27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 작곡 부문 수상(2007), 제7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수상(2013), ARKO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 작곡가 선정(2017·2021·2024), KBS국악대상 작곡상(2022), 제42회 대한민국작곡상(2023)을 수상했다.

“대구시립국악단에서 10년간 근무할 때 진짜 공부 많이 했어요. 국악관현악 악보도 많았고, 악보를 보면서 어떻게 연습 되는지 바로 옆에서 보면서 연구하니까 늘 수밖에요. 오전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하면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서너 시간 자면서 곡을 썼습니다. 덕분에 연주자들이 제 곡은 연주하기 편안하다고 합니다. 악기를 알고 연주가 되게끔 쓰는 게 중요하거든요.”

국악작곡가 이정호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이정호 제공 국악작곡가 이정호 부산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이정호 제공

5년 전인 2020년 3월 부산대 교수로 임용되기 직전까지 그는 10년간 대구시립국악단 악보계 상임단원으로 일했다. 대구시립에 몸담고 있으면서 해외 유학도 다녀왔다. 대구시립에 해외 연수 조례가 있는데, 국악단의 경우 굳이 외국으로 나갈 일이 없어서 신청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첫 도전자가 되어 오스트리아 빈의 프란츠 슈베르트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석사과정)했다. 그곳에선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했지만 결국 더 전통적인 스타일이 되어서 돌아왔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곡을 쓸 시간이 늘 부족했다. 코로나 기간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집에 있으면서 계속 곡을 썼다. “편성이 작으면 쓰기가 편한데, 저는 관현악이 익숙하고, 빨리 쓰는 편입니다. 쓸 때마다 고민인 건, 많은 곡을 쓰면서도 늘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고민은 대학 시절 은사인 고 이해식 교수의 가르침이 컸다.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영남대에 진학했다. 은사는 “곡 안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입체성과 변화,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 가르침은 또다시 그의 학생들에게 강조되고 있다. 한국음악의 입체성이라고 한다면, 공간감, 색채감, 악기 음색을 들 수 있다. 입체감을 살리는 데는 국악기의 개성적인 음색을 살리는 방식이야말로 최적이다.

국악기 중에선 거문고를 잘 다루는 편이다. 영남대 입시도 거문고로 쳤다. 입학 뒤에도 거문고를 놓지 않았다. 군대(육군본부군악대)도 거문고병으로 복무했다. 작곡병은 1명을 모집하지만, 거문고는 남자가 많지 않아서 전략적으로 선택했는데 그에겐 매우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군대 복무 2년 동안 여러 사람과 교류하면서 국악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국악기 대부분을 공부했습니다.”

결과적이지만, 대구시립 악보계에서 국악관현악 작곡 실습을, 거문고병으로 복무한 군대에서 다양한 국악기의 쓰임새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다. “저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활용하려고 애썼습니다.”

2023년 3월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특별 연주회를 객원 지휘한 이정호 부산대 교수. 이정호 제공 2023년 3월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특별 연주회를 객원 지휘한 이정호 부산대 교수. 이정호 제공

부산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이 교수가 국악 작곡에 결정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고2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 발매한 <창작음악 제2집> CD를 들었어요. 이준호 작곡가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축제’(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1997년 위촉곡)가 있었는데, 그 곡의 매력에 빠져 국악 작곡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곡은 주로 책상에 앉아서 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식으로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전자악기를 쓰면서 좀 더 수월하지만 작곡가에겐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들리는 대로 곡을 쓰면 한계가 있고,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실제 소리를 상상해야 더 넓은 곡을 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을 물었더니 2개를 꼽는다. 2018년 12월 KBS국악관현악단 송년 음악회 때 의뢰받은 70분짜리 곡 ‘별’(2018년 12월 13일 초연)과 2017년 제9회 아창제에 당선된 합창과 진도씻김굿, 국악관현악을 위한 ‘진혼’(Requiem)이다. “지금 보면 ‘별’은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당시엔 최선을 다했고, 이준호 지휘자의 퇴임 연주회를 겸해 의미가 컸습니다. ‘진혼’은 정말 열심히 쓴 곡이고, 이를 계기로 서울권에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수가 작곡한 국악관현악의 경우, 화려하고 웅장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나하나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전통음악 선율 위에 세운 소리의 건축물은 압도적인 음향을 자랑한다. “지역에 있다 보니 평범하면 눈에 안 띌 것 같아 자꾸 화려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올해도 그의 위촉 곡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4월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초연곡 2곡(가야금 협주곡, 거문고 협주곡)이 있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및 국립남도국악원,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전주시립예술단 위촉 작품도 예정돼 있다. 부산가야금연주단 곡도 쓰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체조 음악 녹음 작업도 진행 중이다.

“후배나 제자들에겐 저를 따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기악 연주자는 선생을 따라가는 경향이지만, 작곡은 이걸 바탕으로 자기만의 장르를 만들어야 합니다. 40대가 지나가면서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디테일과 깊이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스타일(곡)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음악만 들었을 땐 ‘이정호 작품’인 걸 모르면 좋겠습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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