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장자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 카메라

입력 : 2025-02-12 1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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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오정민 감독 연출 작품 '장손'
제사 통해 한국 가부장제 다뤄
서정적 연출, 역사 아픔 보듬어

영화 '장손'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장손'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장손에게 시집온 외숙모는 일 년에 8번의 제사상을 차린다. 이제는 제사상 정도야 눈 감고도 차린다고 말하지만, 그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다. 그 와중에도 외숙모는 장손이라는 역할을 물려받은 아들이 장가를 가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다. 유산은 물려주지 못할지언정 제사만은 물려줄 수 없다는 외숙모의 의지는 가족 모두가 받아들인 지 오래다.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을 차리는 외숙모를 보며 영화 ‘장손’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가부장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영화는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닐 것이다.

‘장손’은 3대에 걸친 대가족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이면서 시작하는 영화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전을 부치는 여성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푸념과 농담을 늘어놓는다.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는 그런 며느리와 딸, 손녀를 보며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며 핀잔을 준다. 그때 집안의 장손 ‘성진’이 도착한다. 장손이 오면서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되지만 사실 제삿날 장손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장손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다.

영화는 장손이 아니라 김씨 집안의 여성들을 따른다. 집안 여성들은 제사상을 차리는 것뿐 아니라, 가족이 경영하는 두부 공장의 일도 주도한다. 두부 공장은 집 바로 옆에 있는데 여성들은 공장과 집을 오가면서 가사노동과 집안 경제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의 서사는 장손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의 모순을 담는다고 볼 수 있지만, 카메라는 장자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 카메라가 따르는 적자는 바로 김씨 집안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손녀 ‘미화’는 제사를 일찍 지내자는 말을 전하라며 장손인 동생을 할아버지 방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녀들이 말을 할 수 없었던 건 여성들 스스로에 원인이 있다. 할머니는 제사 음식을 만드는 딸과 며느리, 거기다 임신한 미화에게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했지만 성진에게는 손수 에어컨을 틀어준다. 미화에게는 제사 음식을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장손에게는 음식을 허락한다. 집안 남성들은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다. 할머니와 엄마가 먼저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미화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지켜보며 자신의 말에 힘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성진을 할아버지에게 보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이는 가부장제에서 미화의 생존 전략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통해 말해지는 존재였음을 알린다. 어쩌면 영화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어 보이지만 단순히 젠더 갈등으로만 풀 수 없다. ‘장손’은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또한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굵직한 역사를 관통하며 좌절을 배웠고, 평생을 트라우마에 갇힌 채 살아온 인물들이다. 영화는 그들의 아픔 또한 함께 보듬어 안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가족영화를 만나왔다. 그 중 ‘장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가족의 삶을 돌아보고 떠나보낼 줄 아는 시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가족은 한 번의 제사와 한 번의 장례를 치르며 여러 번의 이별을 경험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운을 남긴다. 장손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할아버지가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하다 어딘가로 향한다. 롱숏으로 비추는 눈 내리는 마을의 전경. 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처럼 보일 때까지 카메라는 오래 지켜본다. 마치 배웅하듯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롱숏, 롱테이크다. 오정민 감독은 한 가족사의 이야기를 아련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로 넘어가면서 계절을 담아내고,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연출로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로 인해 가족의 역사를 감히 함부로 재단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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