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한겨울 삭풍 견딘 '매화꽃'을 쳐다본 의미는?

입력 : 2025-02-12 18:03:14 수정 : 2025-02-12 19: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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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사자머리 거위'

중국 1급 유물인 여기(呂紀)의 '사자머리 거위'(獅頭鵝圖軸). 명나라 시대 작품이며 비단에 채색했다.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소장. 경기도박물관 제공 중국 1급 유물인 여기(呂紀)의 '사자머리 거위'(獅頭鵝圖軸). 명나라 시대 작품이며 비단에 채색했다.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소장. 경기도박물관 제공

구멍이 숭숭 뚫린 괴석 뒤에 선 나뭇가지에 한겨울 바람을 견디며 매화꽃 송이가 맺혔다. 봉오리를 활짝 터뜨린 것, 싹을 틔우려는 것, 이제 막 꽃잎을 피우려는 것, 가지각색이지만 삭풍은 함께 견디어 냈다. 높은 혹을 가진 거위가 예리하고 날렵하게 꺾이고 꺾인 가지에 달린 매화나무를 지나며 무심코 고개 들어 꽃을 본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묵화(사군자, 기명절지도 등)는 소재가 가진 깊은 뜻을 새기거나 음미하려고 그린 그림이다. 부연하면 역사 혹은 사건을 기록하거나 자신의 부귀를 알리려 그리는 서양화와 달리, 서화(동양화)는 몸과 마음을 수신(修身)하기 위해 그리거나 감상하며 마음을 다스리려는 것이었다. 이에 빗대어 이 작품을 생각하면 갖은 외압과 부당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고 있는지 눈앞에 핀 매화꽃을 보며 스스로 물어보려는 순간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여기(呂紀, 1439~1505)의 ‘사자머리 거위’(獅頭鵝圖軸)이다.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명대 서화로 ‘경기도박물관’에서 기획한 ‘명경단청: 그림 같은 그림’에 출품된 작품이다. ‘사자머리 거위’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그림은 시골에서 보았던 거위와 매화나무를 떠올릴 수 있게 사실적으로 그린 화조도(花鳥圖)이다. 명(明)의 9대 황제인 홍치(1488~1505) 연간에 활동한 여기는 사생파(寫生派)를 대표하는 궁정화가였으며, 화려하고 정교하게 그린 ‘화조도’를 최고로 평가받았다. 이처럼 격 높은 작가가 그저 오동통한 거위를 보라고 그렸을 리 없다. 매화와 사자머리 거위가 주제일 리 없는 것이다.

조선에서 ‘기러기’(거위 조상이 기러기이다)는 노인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렸고, 중국에서는 거위를 높은 벼슬아치를 상징한다는 소리가 있으니, 이를 종합하면, 거위는 학식이나 지위가 있는 나이 지긋한 선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징인 거위가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사군자(四君子) 매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이 한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본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중국 남북조시대(5~6세기)에 활동했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화品錄)에서 말한 ‘화육법’(畵六法)은 그림을 비평(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하지만, 그리는 법이기도 하다. 자연과 사물이 가진 외양을 모방해 그대로 옮겨내는 것이 끝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정신까지 옮겨야 진정한 서화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림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일은 그림이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하여 수행하는 것까지이다. ‘사자머리 거위’를 다시 해석하면, 거위가 매화를 쳐다본 뜻은 높은 도덕과 절제심을 갖추기 위해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이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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