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이제 낚이지 마세요"

입력 : 2025-02-12 1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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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2019년 말 모바일 앱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했다. 이 기능을 통해 차주는 앱으로 차량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기능이 도입된 후 많은 테슬라 차주들이 실수로 새 기능을 구매한 사례가 발생했다. 밀리언셀러인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테슬라에 항의 메일을 보내 환불을 요청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작은 글씨로 결제 화면에 ‘업그레이드 환불 불가’라는 문구를 근거로 거부했다. 이는 결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취소는 힘들게 해 놓은 경우다.

여행을 앞두고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숙소를 고를 때 이런 경험을 할 때도 있다. 가격이 적당해 예약 상세 페이지로 넘어가면 처음 본 가격보다 높은 요금이 붙어 있는 경우다. 서비스 요금이나 수수료가 은근슬쩍 추가된 것이다. 마치 눈뜨고 코 베인 꼴이라고나 할까. 이런 눈속임 상술을 다크패턴(Dark pattern)이라고 한다. 영국의 독립 디자이너인 해리 브링널이 2011년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온라인에서 이용자를 속이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종종 ‘낚였다’거나 ‘설계 당했다’고 표현하곤 한다.

흔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을 가진 넛지(nudge)는 인간 행동을 올바른 쪽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다크패턴은 사용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비이성적 선택을 내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다크패턴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규제가 확대·강화된다. 전자상거래 사업자는 정기결제 대금을 인상하거나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할 경우 30일 전에 소비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고객 동의 없이 슬쩍 대금을 인상하는 다크패턴을 반복하는 사업자는 최대 1년 동안 영업정지에 처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14일부터 시행한다.

다크패턴은 소비자가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이러한 유형은 날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오로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는 데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이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우리도 좀 더 철저하고 강력한 규제를 통해 이런 기만적 행위를 막아야 한다. 소비자 역시 이런 패턴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디지털 환경이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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