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입력 : 2025-02-12 1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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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부산 ‘사랑의 온도탑’ 온도 역대 최고
시민과 기업의 온정, 한파 물리쳐
지역 아동 위한 따듯한 나눔도
‘타인과 공존’ 희망의 빛 퍼졌으면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춥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12·3 비상계엄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마음이 무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수출 중심 국가인 우리나라에도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빠진 형국이다. 불안과 우울의 긴 그림자 위에 한파까지 덮치면서 몸과 마음이 더욱 위축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경기침체에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겹쳤지만, 이를 무사히 극복하고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부산 지역 시민과 기업의 온정은 한파를 물리칠 만큼 뜨거웠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진행한 ‘희망2025나눔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기준 124도였다. 총모금액은 134억 7000만 원으로, 목표액 108억 6000만 원을 26억 1000만 원 초과했다. 이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대 최고 모금 실적이다. BNK금융그룹이 지난해 12월 12억 원을 기부했고, 지난달 화승그룹 4개 계열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고액 기부를 약정하는 ‘나눔명문기업’으로 동시 가입했다. 지난해 캠페인보다 기업 기부금 규모가 7억 원 이상 더 늘어난 것이 역대 최고 모금액 달성의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부산사랑의열매에 성금을 전한 개인 기부자들의 다채로운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강충걸 회장 가족이 대표적이다. 강충걸 회장과 부인 박영희 씨, 아들 예성 씨는 20년째 새해 첫날 이웃돕기 성금 기부를 이어왔다. 기부를 통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강 회장 가족에게는 더 큰 선물이 된다고 한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 ‘해물왕창칼국수’ 박기대 대표와 김지영 부대표의 사연도 감동적이었다. 남편인 박 대표는 2017년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133호에 가입했고, 부인인 김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369호 회원이 됐다. 부부 아너 가입 소식이 〈부산일보〉에 소개되자 ‘칼국수를 먹으면 기부가 된다고 하니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이 기부와 나눔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이들의 소망이 깊은 울림을 줬다.

‘사랑의 온도탑’이 뜨거워지는 동안, 많은 단체와 기관이 지역 아동을 위한 따듯한 나눔에도 동참해 훈훈함을 더했다. (주)ERK 리더모아 영어도서관은 지난해 말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에 저소득가정 아동을 위해 1400만 원 상당의 동절기 이불, 베개, 쿠션 174세트 등을 후원했다. 기부 물품은 부산 지역 복지관, 모자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총 24곳의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저소득가정 아동에 전달됐다. 리더모아 영어도서관 고영하 대표는 부산 지역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이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 이번 후원을 제안했다. 어린이용 이불, 베개, 쿠션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흐뭇해진다.

자동차부품 회사 (주)퓨트로닉(대표이사 회장 고진호)은 올 초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또 1억 원을 기부하며 부산 지역 1호로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 3억 클럽’에 가입했다. 퓨트로닉은 2014년부터 매년 연말에 일시 기부와 2023년 9월부터 정기후원으로 매달 100만 원씩 기부해 지난해 기부액이 2억 원을 넘어섰다. 올 초 1억 원 기부로 누적 기부가 3억 1000만 원에 달했다.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은 대한적십자사의 단체 고액기부 인증 프로그램이다. 퓨트로닉 사례는 기업이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주변을 살피고 보듬는 마음이 부산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따듯한 공동체를 만드는 시민과 기업들의 나눔 선순환을 접하면서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인문무크지 〈아크(ARCH)’ 9호: 품격〉이 떠올랐다. 아크 9호 첫 장에 실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쓴 ‘품격, 이타성의 다른 이름’이란 글 때문이었다. 장 대표는 “인간의 품격은 결국 나와 타인이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존중하고 공공선에 헌신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기희생을 바탕 삼아 이기심을 억제하고 타인을 관용하며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고 적었다.

최근 활발한 나눔의 궤적을 보면서 부산은 품격 있는 도시로, 부산 시민은 품격 있는 존재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부산’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희망의 빛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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