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스팔트 위의 예수

입력 : 2025-04-02 09:48:49 수정 : 2025-04-02 22:33:16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박금열 자유기고가

박금열 자유기고가 박금열 자유기고가

140년 전 한국 개신교는 의료와 교육과 고아사업과 함께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왔다.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여권 신장과 근대화에 큰 밑그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초창기의 선교사들은 말도 문화도 다른 이역만리의 조선 땅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도전적이며 헌신적인 삶을 살았으며 각 마을과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도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1960~70년대 한국 산업화의 바람으로 농어촌의 많은 청년들은 자신의 더나은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의 산업 현장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만만찮은 도심의 삶속에 그들은 고달팠으며 몸과 마음은 기계처럼 지쳐갔다. 그들은 우연히도 도심속의 교회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위로와 안식과 전혀 다른 계층들과의 교재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교회는 그들에게는 예배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1976년부터 한국에서10년간 인기리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은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잉갈스 가족들의 미네소타주 작은 마을 정착 과정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다.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앨던 목사는 강단에서 설교만 하는 목사가 아니라 개방적이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주는 도덕적 가치와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한국인들의 안방에 훈훈함과 교훈적인 이미지로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한국 교회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지역민들로부터 나름 존경받는 공동체였고, 또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빵과 과자와 학용품과 선물을 한아름 받아 오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도시 밀집 현상은 한국 교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아웃사이드나 비주류도 아닌 인구 중 20% 가까이와 국회의원 30% 가까이가 개신교 교인일 정도로 주류층이자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서기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이후부터 유럽 교회가 타락해 갔듯 한국 교회도 그와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와 비리들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매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희화화의 대상의 축이 스님이나 절에서 이제는 서서히 교회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와 이념의 바람이 한국 교회에 광풍처럼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아스팔트 위의 천박한 예수로 부활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외치는 그들의 함성이 예수의 처절한 통곡으로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이젠 탄핵의 대장정의 모든 시간들이 끝났다. 세상 풍경 중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란다. 생채기로 너들너들해진 아스팔트 위의 예수를 과감히 가정의 예수로, 일터의 예수로, 지역사회의 예수로 당신의 자리로 돌려보낼 수가 없는 것일까.

끝으로 한때 한국 기독교 교인들에게 많은 영적 도전을 주었던 찰스 쉘던의 책 제목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로 한국 교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