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물을 만나 이룬 ‘흙물 그림’. 채성필(53·프랑스 거주)의 그림은 물이 흙에 침투한 시간, 중력에 의한 흙물의 낙하 속도, 그리고 작가의 개입이 더해지면서 우연은 필연이 된다. 흙, 물, 중력, 우연, 필연은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그리고 물(水), 불(火), 나무(木), 쇠(金), 흙(土) 등 오행을 토대로 본질과 근원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데이트 갤러리(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8번길 5, 2층)에서 채성필의 ‘물의 초상’ 부산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흙물에 대한 선입견으로, 황색(흙) 그림을 상상했는데, 이전의 연작 ‘블루의 역사’가 의미심장하게 재해석된 게 대부분이다. 여러 차례 거른 황토와 파랑 천연 안료를 섞은 흙물이어서, 전시장은 진한 파랑 계열의 파도가, 물거품이, 물길이, 윤슬이 굽이쳤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그린 블루는 마냥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게 아니란다.
“작가 노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물의 초상’ 작품 블루는 몸에 아픔으로 든 멍이기도, 치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상을 꿈꾸는 삶의 색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데이트 갤러리 김경애 대표의 설명이다. 푸른색 너머에 멍, 아픔, 상처와 같은 ‘부정의 내러티브’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실제 몇몇 작품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촛불 집회’ 등 국내외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 삼아서 그렸다는 것이다.
채성필 작가는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 먼저,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 놓고 그 위에 천연 ‘펄(pearl) 안료’를 입혀 은빛 광채가 나는 표면을 만든다. 이후 고운 거름망으로 거른 황토와 천연 안료를 섞어 만든 흙물을, 수수나 풀로 엮어 직접 만든 붓으로 여러 차례 흩뿌린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흙물로 덮인 캔버스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캔버스를 세워 놓고, 강력한 수압의 물을 캔버스에 분사한다. 물벼락을 맞은 물감은 이전 단계에 칠해진 먹과 흙을 섞으면서 은빛 바탕화면을 유유히 타고 흘러내린다.
이번 전시 제목 ‘물의 초상’ 연작도, 알고 보면 물이 표현한 땅의 움직임이다. 언뜻 보면 구상 같기도, 추상 같기도 하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오간다. 서울대에선 동양화를 전공했고, 프랑스로 건너가 렌느2대학에선 조형예술학 석사과정을, 그리고 파리1대학에선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푸른 하늘과 같은 희망, 푸른 멍과 같은 우울을 동시에 함유하는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지난해 ‘키아프 서울’에선 솔로 부스로 참가해 오픈 첫날 ‘완판’해 화제가 됐다.
채성필 작가는 지난달 5일 부산 전시를 오픈한 뒤 프랑스로 돌아갔다.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일명 ‘고흐 마을’로 유명해진 그곳에서 22년째 살고 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일요일 쉼. 문의 051-758-9845.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