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태광산업이 지난해 2000억 원을 벌고,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쌓고도 투자나 주주환원책에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여 년째 사법리스크에 시달려 온 이호진 전 회장의 부재가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만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선 이 전 회장이 건강을 회복하고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시점인, 이르면 올 하반기 경영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일 결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해 272억 원 영업손실을 봐 4년 연속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 수익 등을 통해 당기순이익 2184억 원을 거둬 전년 영업손실(147억 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이에 따라 배당 등 주주환원책의 근거가 되는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말 기준 4조 1092억 원까지 쌓였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1주당 1750원씩 지급하는 데 그쳤다. 배당금 총액은 15억 원 수준이다.
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지급 비율을 나타내는 배당성향은 0.0078%에 불과하다. 주가 대비 배당금 비율을 나타내는 시가배당률 역시 0.3%에 머물렀다.
2023년 코스피 상장사의 배당성향 평균은 40%, 시가배당률은 3%를 고려하면 눈에 띄게 낮다.
태광산업이 재무적 불안감 때문에 주주환원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 4344억 원으로 전년 말(1조 2656억 원)에 비해서 13.3% 늘었다. 구체적으론 현금 및 현금성 자산 3904억 원, 단기금융상품 2984억 원,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7456억 원 등이다. 여기에 SK브로드밴드 주식 매각 대금 9000억 원도 곧 손에 쥘 예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태광산업의 부채비율은 17.6%에 불과하다. 통상 적정 수준의 부채비율은 100~200%로 본다. 유동비율 역시 488%로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이 1년 내 갚아야 할 유동부채보다 4.88배 많다.
이처럼 곳간이 풍족함에도 태광산업은 수년간 대규모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태광그룹은 지난 2022년 12월 향후 10년간 12조 원 규모의 투자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된 건은 지난해 8월 청화소다 공장 생산라인 증설에 1500억 원을 투입한 것이 유일하다.
이처럼 태광그룹이 보수적인 경영을 이어나가는 데는 이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결정적이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회사 자금 횡령·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되면서 태광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8년여에 걸친 법정 공방을 벌였고 실형이 확정된 이후엔 병보석으로 나왔다가 무단외출 등 ‘황제 보석’으로 파장이 일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광산업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먼저 나서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트러스트 측은 “태광산업의 경영정상화와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최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정식 복귀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했다.
태광산업의 투자 재개는 2023년 8월 복권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에 달려 있다.
다만 이 전 회장의 건강 상태와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사법리스크가 문제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이 경영활동을 수행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료진의 권고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이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역시 해소해야 한다. 이 전 회장은 그룹 임원들을 계열사에 근무하게 하는 방식으로 수십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송치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에 대해 “트러스트도 끌려 나오는 모습은 원치 않을 것”이라며 “탄핵 정국이 끝나고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