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한강변에 지었어야 했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입력 : 2025-08-23 09:00:00 수정 : 2025-08-23 16: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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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생산 첨병 원전은 서울 대척점에
전력 대량 소비 시설은 대부분 서울에
최초 원전 입지 선정부터 시작된 모순

가동 중단 이후 해체 논의가 진행중인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전경. 부산일보DB 가동 중단 이후 해체 논의가 진행중인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전경. 부산일보DB

“세계 최대 원전밀집지역인 동남권의 주민들은 수도권에는 왜 원전을 짓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요?”

2012년 4월 고리1호기 문제와 관련해 부산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김종신 사장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에 김 사장은 두고두고 동남권에서 회자되는 답을 남겼다. “수도권은 인구밀집 지역이라 원자력발전소 입지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귀를 의심한 기자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동남권도 인구밀집지역이지 않느냐”고 반박하자 김 사장은 “반경 몇 km 이내라는 기준이 있고…”라며 얼버무렸고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한강변 원전' 밈의 등장

원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이 에피소드는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민의 분노를 넘어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발전한다. 수도권은 2023년 기준 한전이 그해 판매한 전체 전력량의 40%에 가까운 전력을 소비할 만큼 전력 사용량이 많은 지역이다. 이런 '전기 먹는 하마' 수도권에 원전을 지으면 될 텐데 굳이 수도권 대척점인 동남권을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으로 만들고 전국 산야를 4만 개가 넘는 대형 송전탑으로 뒤덮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전문가들이 한수원 사장처럼 얼버무리는 사이 그 물음에는 답이 달리기 시작했고 결국엔 ‘원자력 발전소를 서울 한강 가에 지으면 좋은 점’이라는 밈으로까지 발전했다. 풍부한 수자원에다 송전 과정의 비용 절약, 수도권 일자리 창출 등 절묘한 풍자를 곁들인 밈에 많은 이들이 집값 안정화와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 해결까지 가능하다며 호응하기도 했다.


서울과 먼 지역에만 원전 건설이 잇따르자 서울 한강 가에 원전을 지을 수 없느냐에 대한 물음이 커졌고 이를 풍자하는 밈이 한때 온라인을 달궜다. SNS 자료 발췌 서울과 먼 지역에만 원전 건설이 잇따르자 서울 한강 가에 원전을 지을 수 없느냐에 대한 물음이 커졌고 이를 풍자하는 밈이 한때 온라인을 달궜다. SNS 자료 발췌

다시 들여다 봐도 기발한 밈을 보면서 드는 의문점 하나. 과연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처음 지을 때부터 동남권 등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만 짓자는 논의를 했던 것일까. 그래서 원전 부지를 처음 결정할 때의 과정을 밟기 위해 한전의 1970년 ‘원자력발전소 건설현황’을 직접 찾아봤다.


■첫 원전 부지 후보였던 한강변

당시 정부는 1964년부터 원전 부지 선정에 착수해 부산·울산 지방 외에 경인, 목포, 군산까지 모두 4곳에 대한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이듬해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과 함께 경인 지방의 경기도 고양시 행주 지역과 부산·울산 지방의 고리와 송정(공수포) 등 3곳으로 후보군을 압축했다. 원전 입지 조건 검토에 있어선 행주 지역, 즉 한강변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970년 한국전력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황' 문서 일부. 한전 자료 발췌 1970년 한국전력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황' 문서 일부. 한전 자료 발췌

그러던 것이 한전이 최종적으로 ‘행주 지역은 인구조밀한 서울에 인접할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탁월풍(편서풍을 뜻하는 듯)이 서울을 향하여 부는 빈도가 높다’는 이유로 행주 지역을 최종 부지에서 제외하면서 고리 쪽으로 입지가 결정되고 말았다. 서울만 인구밀집 지역으로 챙기는 분위기는 그때부터 시작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내용이다. 탁월풍을 문제로 삼는다면 이후 전남 영광 같은 지역에는 원전을 설치해선 안 되는 거였다. 영광 한빛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탁월풍의 영향을 받게 되는 그 동쪽 지역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전기 더 필요하다는 수도권

이 와중에 지난달에는 최근 11개월 동안에만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사용 목적으로 엄청난 전기 사용 신청이 접수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 제출된 전력계통영향평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만 한전에 접수된 전기 사용 신청은 모두 290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70%에 가까운 195건이 수도권에 집중됐으며 그 용량은 20GW에 이른다. 원전 하나의 전력 생산량이 1GW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원전 20기를 가동해야 할 판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이라도 원전을 한강변에 지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AI에게 원전을 한강변에 지을 때 나타나는 영향을 물어봤다. 널리 퍼져 있는 데이터를 AI가 학습한 결과물일 터이므로 타당성이 꽤 있는 답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역시나 AI가 내놓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 송전 비용 절감: 수도권에서 전기 수요가 가장 많은데, 한강변에 원전을 지으면 소비지 근처에 발전소가 위치해 송전선로 설치와 유지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원전 송전망 구축 비용이 원전 전체 건설비의 1/3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2. 에너지 효율 상승: 전기 생산 지역과 소비지가 가까울수록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이 감소한다.

3. 풍부한 냉각수 확보 가능: 한강은 냉각수 공급량과 수온 면에서 원전의 기술적 조건을 충족한다는 평가가 있다. 냉각수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며, 일부 내륙국가들도 강을 발전소 냉각수로 활용하고 있다.

4. 사회적 갈등 비용 감소 및 지역 일자리 창출: 수도권 주민이 원전 수용에 적극적인 경우, 기존 해안지역 원전 수용 주민들의 부담을 완화하고, 서울 근교에 관련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5. 인구 밀집 지역 내 사고 위험: 한강변은 수도권 인구가 밀집한 지역으로, 만에 하나 원전 사고가 발생할 시 그 피해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안전 문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심리적 저항이 매우 크다.

6. 생태계 영향: 냉각수로 활용한 뒤 배출되는 온수로 인해 한강 생태계가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방류된 온수로 인한 평균 수온 상승, 국지적 생태계 파괴 등이 우려된다.

7. 폐기물과 안전 관리 문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사고 후의 대규모 피난 및 관리 문제가 인구가 많을수록 복잡해진다.


5~7번의 경우 원전을 전부 폐기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수반되는 문제이며 동남권이 늘 머리에 이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므로 논외로 하고 나머지 이점들을 고려한다면 한강변에 원전을 짓지 않아야 할 논리를 찾기가 더 어려울 듯하다.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해 전국 산야에 설치된 거대 송전탑만 4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 울주군 송전탑 뒤로 슈퍼문이 지고 있다. 부산일보DB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해 전국 산야에 설치된 거대 송전탑만 4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 울주군 송전탑 뒤로 슈퍼문이 지고 있다. 부산일보DB

■이제라도 한강변에?

수도권에서만 원전 20기 수준의 추가적인 전력 소비를 예고하는 나라에서 원전을 지역에만 잔뜩 지어놓은 기존 정책이 한계에 다다른 것은 명확해 보인다. 가동 중단 원전을 해체하겠다는 애드벌룬 이면에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얼버무리며 영구 핵폐기장화 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고 보면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방향 전환을 시급히 모색해야 옳다. 수도권용 전력 송전을 위해 전국 산야에 4만 개 이상 설치된 거대 송전탑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을 위해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나야 할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은 민도가 높아진 만큼 천문학적으로 올라갈 공산이 크다. 이 같은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원전만큼은 혹시 추가 건립을 고려한다면 이제 한강변도 후보에 넣는 게 맞을 듯하다. 다행히 해외에서 새로 각광받는다는 SMR(소형 모듈 원자로) 같은 신기술의 등장은 부지 확보 문제 같은 것도 쉽사리 해결 가능하다니 더욱 고려해 봄직 하지 않은가.

특정 지역 주민들만 위험에 놓여도 괜찮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전력 생산 정책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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