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잘잘못 아닌 운명 같은 것… 현실 수용의 용기를

입력 : 2025-10-1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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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자식 둔 부모

성전환이 삶의 목표가 된 아이
성인 되자 수술·치료할 결심
부모로선 모든 기억 부정당한 것
사랑하는 사람 잃는 듯한 고통
윤리 넘어 애도의 관점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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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글을 쓴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는 올해 초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개인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메일(gomin119@busan.com)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Q. 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주변의 흔한 남자아이와는 다른 행동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커졌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고 애둘러 말하며 아이를 포용하려 애썼습니다. 아이는 정말 제 말을 잘 따라주었고,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힘든 사춘기 시절 사랑하는 친구에게 고백조차 할 수 없다며 울먹이면서도 열심히 생활하는 아이를 보면서 제 마음도 다잡았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대학 진학 후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수술을 받겠다는 말을 꺼내면서 불거졌습니다. 크게 말다툼을 한 이후 아이는 “지금까지 한 격려는 모두 거짓이었다”며 저희 부부와 더 이상 소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습니다. 이대로 아들을 잃을까 겁이 나면서도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받아들일 용기도 안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이 사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란 생물학적(신체적) 성별과 심리적·사회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본인은 여자가 되고 싶어하거나 또는 그 반대 경우입니다. 트렌스젠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때로는 해결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 트렌스젠더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고 비수술적 방식으로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성전환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외형과 역할을 바꾸려고 합니다. 성전환 수술과 호르몬 치료에 대한 집착은 그것 자체를 삶의 목표로 삼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대화로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트렌스젠더를 파라노이아(정신증)의 한 형태로 분류합니다.

어느 날, 20대 혹은 30대의 아들이나 딸에게서 자신의 성을 바꾸기 위해 수술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부모가 받는 충격의 강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큽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양상 논리학에서 ‘불가능’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P) 아니면 일어나지 않거나(∼P) 둘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양상 논리학에서는 불가능으로 정의하며 기호로 표시하면 ‘P and ∼P’입니다. 부모의 눈에 자식은 아들이나 딸(아들 or 딸) 밖에 없습니다. 아들이면서 동시에 딸(아들 and 딸)인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딸이면서 동시에 아들인 경우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트렌스젠더 자녀는 자신의 육체적 성(性)은 거짓이고 진짜는 그 반대의 성이라고 말합니다. 감옥과도 같은 현재의 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수술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부모의 눈에는 불가능으로 보이는데 트렌스젠더 자녀들은 가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힘듭니다.

트렌스젠더는 부모에게 상실과 애도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20대 이후로 성장한 자식은 부모의 뇌에 어떤 존재로 각인되어 있을까요? 출생 후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그 긴 세월동안 축적된 기억의 집합체로 인식됩니다. 태어나던 순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이 모여 현재의 아들이나 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앨범에 꽂혀있는 많은 사진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나 딸이 지금까지 부모에게 저장된 그 모든 기억을 부정하고 아들은 여자로, 딸은 남자로 나타난다면, 지금부터 다른 성으로 살겠으며 그러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겠다고 주장한다면, 충격을 받지 않을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트렌스젠더는 보수와 진보, 도덕과 윤리의 관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는 애도의 문제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현실에서 잃게 되는 것이고, 트렌스젠더 역시 자신이 원하는 성을 갖기 위해 사회가 인정하는 성을 잃는 것입니다.

외래에서 트렌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는 저에게 ‘왜?’라는 질문을 합니다. ‘도대체 왜 우리 애가 그렇게 되었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모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운명입니다. 트랜스젠더 자녀의 부모는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인 충격→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밟아나갑니다. 부모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가능’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부모이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회에서 낙인찍혀 살아가는 트렌스젠더 자녀들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사랑과 안타까움의 눈물입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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