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은 종종 ‘화장실 없는 호텔’에 비유되곤 한다. 원전은 사고 없이 잘 운영할 경우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전력 생산이 가능한 반면 분뇨에 해당하는 사용후핵연료 같은 핵폐기물 처리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 이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은유에 가장 들어맞게끔 국내에서는 분뇨가 쏟아지는데도 화장실 마련에 대한 대책은 외면한 상태로 호텔을 운영하는 듯한 방식의 원전 가동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 마련 비용까지 원전 가동 비용으로 산정할 경우 원전의 ‘값싼 에너지’라는 이미지가 훼손될까 두려운 탓인지 관련 공문을 명확한 이유 없이 폐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국회가 입수한 ‘2023년 방사성 폐기물 관리비용 산정안’ 등에 따르면 그해 산업부 등은 원전 폐기물 관련 비용을 계산해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다발당 3억여 원에서 6억 6000여만 원으로 배 이상 증액했다. 이에 따라 전체 원전 부담금은 연간 8000억 원 수준에서 1조 원대 후반까기 점차 증가할 수 있었다. 원전 발전 단가를 급격히 치솟게 할 수 있는 이 같은 결과를 놓고 산업부와 기재부는 공문도 주고받지 않고 실무 협의로만 법령 고시 등 후속 절차를 중단했다. 두 정부 부처가 당시 고준위특별법안 국회 계류 등을 고려해 정무적 판단으로 부담금 산정 결과를 고시조차 하지 않고 뭉갰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은 고준위 방폐장이나 중간 시설 건립을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예산이다. 현재 국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그로 인한 포화율은 대부분 80%를 넘으며 90%를 훌쩍 넘은 발전소까지 있는 형편이다. 5년 정도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보관할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올해 시행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원전 부지에 건식저장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에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한 부담금 산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비용은 미래 세대에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원전 가동에 필히 뒤따르는 난제다. 현재 각 원전 부지에 쌓여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해당 부지 안에 건식저장시설을 마련해 일단 저장해 놓겠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근 지역 주민들로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국내에서 영구처분시설을 만들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건식저장시설이 영구 방폐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같은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한 부담금 산정마저 정부 부처들이 멋대로 깔아뭉갰다면 향후 어떤 신뢰를 토대로 주민들을 설득할 터인가. 정부는 지난 고시 철회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조속히 부담금 현실화부터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