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죽기 전에 고른 곡, 쇼팽의 발라드 1번

입력 : 2025-10-16 18: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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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프레데릭 쇼팽. 위키피디아 프레데릭 쇼팽. 위키피디아

오늘은 위대한 피아니스트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태어난 날보다 떠나간 날이 더 마음이 쓰이는 작곡가가 있다. 주로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처럼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쇼팽은 영국 연주 여행을 하는 동안 가뜩이나 좋지 않던 건강이 치명적으로 나빠졌다. 1849년 10월 17일 새벽에 쇼팽은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죽어가면서 자신의 심장을 고국 폴란드에 묻어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사실 쇼팽은 스무 살에 폴란드를 떠나온 뒤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평생 이방인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던 자신의 그리움과 아픔을 담아 폴로네즈, 마주르카 같은 곡을 썼다. 그래서 슈만은 쇼팽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속에는 특별하고 강력한 민족주의가 있다. 만약 러시아 황제가 쇼팽의 곡에 얼마나 위험한 발톱이 있는지 알았더라면, 분명히 그 음악을 금지했을 것이다. 쇼팽의 작품은 장미 속에 숨겨진 대포다!”


쇼팽 : 발라드 1번 - 임동혁 (피아노) 쇼팽 : 발라드 1번 - 임동혁 (피아노)

쇼팽의 가족은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심장을 따로 빼서 알코올에 보관해 두었다. 10월 30일 파리 마들렌성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지고 쇼팽의 몸은 파리 페르 라세즈 묘지에 묻혔다. 그리고 이듬해인 1850년에 누나 루드비카가 동생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심장을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져가 성십자가성당에 안치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 아닌가.

쇼팽이 남긴 네 곡의 발라드에도 이러한 민족주의 정신이 잘 나타난다. ‘폴란드의 영혼’이라 불리는 시인 미츠키에비치의 시에 자유로운 상상력과 굴곡진 이야기를 담아놓았다. 그중에서도 발라드 1번이 가장 사랑받고 있는데,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 영화 ‘피아니스트’가 생각난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바르샤바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은 폐허가 된 건물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너는 뭐 하는 사람이냐는 장교의 질문에 슈필만은 대답한다. “저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마침 그 집에 낡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고, 장교는 슈필만에게 피아노를 쳐보라고 한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그가 선택한 곡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죽기 전에 단 한 곡을 노래하라면 나는 무슨 곡을 부를까? 아마도 나는 이것저것 고르다가 빨리 결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총을 맞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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