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이달에만 2% 넘게 추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6개월 만에 1440원대로 뛰었다. 26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 외환 시세가 게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이달에만 2% 넘게 추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6개월 만에 1440원대로 뛰었다. 원화 절하율은 일본 엔화에 이어 주요국 중 2위를 기록했으며,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6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내다보고 있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24일 전주 대비 17.2원 상승한 1439.4원에 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23일에는 장중 1441.5원까지 뛰면서 지난 4월 29일(장 중 고가 1441.5원) 이후 약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4일 1,400원, 25일 1410원을 연이어 넘어선 데 이어 이달 10일 1430원, 23일 1440원까지 뚫었다.
원화는 이달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로도 가치 하락폭이 컸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 24일 야간 거래 종가를 기준으로 지난달 말 대비 2.3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1.31% 절상됐는데, 원화는 그보다 더 크게 절하된 것이다. 달러화 지수(달러인덱스)를 구성하는 통화 중 유럽연합(EU) 유로(-1.12%), 영국 파운드(-0.86%), 캐나다 달러(-0.75%)는 원화보다 하락 폭이 작았고, 스위스 프랑(+0.10%)과 스웨덴 크로나(+0.16%) 달러 대비 강세였다. 원화보다 더 떨어진 통화는 일본 엔(-3.12%)뿐이었다.
최근 환율 상승 요인으로는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이 꼽힌다. 한미 양측은 다음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타결을 목표로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데 주요 쟁점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에서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자칫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는 등 정부 관계자들이 기대치를 낮추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원화 약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확장 재정정책을 공언해온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가 취임하면서 엔화가 약세를 나타낸 것도 원화에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다카이치 총재 당선 이후 재정 정책 확대, 일본은행 금리 인상 지연·종료 시나리오가 엔화 약세로 이어지면서 원화도 동조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미 양측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가운데 현금 투자 비중에서 주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8년에 걸쳐 연 25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현금 투자를 요구하지만, 우리 측은 규모를 훨씬 줄이자는 입장을 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한은에 따르면 외환시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규모는 연간 150억∼200억 달러 정도다. 150억∼200억 달러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는다고 해도 환율 안정을 자신할 수 없다. 세부 사항을 두고 여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 상단을 1450∼1460원 정도로 제시하면서 당장 다음 주 한미 관세협상 타결 여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등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민경원 연구원은 올해 4분기 환율 범위로 1370∼1460원을 예상했다. 그는 “유로화 고평가 해소, 미국 성장 우위와 달러 자산 수요 강화로 달러 지수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