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와 그린데이터센터 집적단지 일대. 김경현 기자 view@
숱한 재편 시도에도 활로를 뚫지 못한 부산·울산·경남 제조업이 첨단 로봇산업과 만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 기계, 조선을 비롯한 사실상 모든 분야 제조업이 망라돼 있고, 각 공장에서 매일 생산 데이터가 쌓이는 생생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테크 기업들도 부울경을 주목하는 상황이다. 바로 동남권이 막 가상세계를 벗어나기 시작한 인공지능(AI)이 물리적 실체와 결합하는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이다.
부울경 산업계와 학계는 벌써 각종 로봇에 들어가는 센서, 머신러닝 등을 포함하는 로보틱스, 물리적 실체를 가지게 된 피지컬 AI 등 로봇산업 발아를 위해 뛰기 시작했다.
경남대 유남현 컴퓨터공학과 교수팀은 지난해부터 피지컬 AI를 위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반년 만에 300TB(테라바이트) 넘게 모았다. 이 작업에는 학계뿐 아니라 CTR, GMB코리아, 화승R&A, KG모빌리티, 신성델타테크, 삼송, 코렌스, 삼현 등 부울경 제조기업들이 참여, 각사의 공정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가르치는 ‘행동 지침서’가 될 예정이다. 이는 제조업체들이 기존에 불량률이나 생산량 등 ‘결괏값’ 데이터를 뽑아내던 데에서 여러 단계 진화한 수준이다. 지역에서 피지컬 AI에 사용 가능한 고품질 데이터를 뽑아내는 첫 시도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과거의 데이터가 ‘무엇이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줬다면, 새로운 데이터는 ‘어떤 강도로 볼트를 조여야 하는지’ ‘진동과 열에 따라 나사의 규격이 어떻게 버티는지’ 등 피지컬 AI가 학습할 수 있는 실제 산업현장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6 CES에서 자동차기업인 현대차가 산업 현장 투입을 눈앞에 둔 휴머노이드 로봇을 화려하게 선보이자 이에 자극받은 동남권 제조업 곳곳에서 기존 생산 현장과 로봇을 결합할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동남권 내부만 감지한 것은 아니다.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역시 부울경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빅테크들은 최신 로봇 설계와 알고리즘을 구현할 현장으로 ‘거대한 데이터 창고’인 부울경 제조업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창원컨벤션센터에 열린 ‘피지컬 AI 및 PINN 모델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애플, 구글, MS, 엔비디아 등이 주도하는 북미 6G 기술 연맹 ‘Next G Alliance(넥스트 G 얼라이언스)’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콘퍼런스에서 미치 청 부의장은 한국과 미국 간의 ‘제조 데이터 상호 운용을 위한 테스트 베드’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도 제조업과 로봇산업의 만남을 새로운 도약 계기로 삼을 정책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기업의 노력을 넘어, 부울경 전체를 관통하는 ‘로봇 거점 센터’와 같은 컨트롤 타워와 클러스터 육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부산AI로봇산업협회 송영환 협회장은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를 찾아 지역을 찾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며 “단순히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첨단 로봇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표준화 작업을 주도할 수 있는 공공 차원의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