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리노공업 본사 전경. 부산일보DB
코스닥 시가총액 9위(27일 기준) 기업인 리노공업의 최대주주가 대규모 블록딜에 나서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역 상공계에서는 블록딜의 배경을 두고 사모펀드 매각설과 상속과 승계를 위한 준비 등 다양한 가능성을 거론한다. 특히 지분 매각 방향에 따라 수도권 또는 글로벌 자본으로의 편입 가능성도 있는 만큼 상공계는 향후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리노공업 최대주주인 이채윤 대표는 보유 주식 2641만 8345주 중 700만 주를 다음 달 26일부터 한 달간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할 계획이라고 지난 24일 공시했다. 전일 종가 기준 매각 규모는 약 8631억 원으로, 회사 전체 주식의 9.18%에 달한다. 거래가 완료되면 이 대표의 지분율은 34.66%에서 25.48%로 낮아진다.
회사 측은 거래 목적을 “보유 주식 매각을 통한 자산 운용”이라고 밝혔고, 구체적인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처분 대상도 공시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리노공업의 주가는 27일 장 마감 기준 11.74% 급락했다. 불과 한 달 전 정기 주주총회에서 매각 또는 승계를 언급하지 않았던 터라, 시장에서는 ‘기습 매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역 상공계에서는 사모펀드 대상 블록딜과 상속·승계 절차를 위한 준비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한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뚜렷한 후계 구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사모펀드와 접촉해 왔다는 말이 있었다”며 “자기 지분이 줄어들더라도 최대주주 지위를 잃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75세 고령인 만큼 기업 승계 준비 가능성도 거론된다. 리노공업은 창업주 개인의 역량에 의존도가 높은 기업으로 평가되는데, 향후 경영 공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지분을 사전에 정리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가 크게 오른 현시점은 상속세 재원 마련이나 지분 구조 재편에 유리한 시기로 꼽힌다. 일반적인 승계 시나리오에 따라 이 대표가 일부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 뒤, 향후 업황 하락기에 재매입하거나 증여·상속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2세 경영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떤 가능성이라도 이 대표가 주가가 많이 오른 지금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할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업 현장이 AI(인공지능)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제조업 현장에 대한 AI의 학습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남권의 반도체, 조선, 자동차 관련 기업들에 대한 수도권 투자업계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기업 인수나 지분 참여를 하려는 분위기가 많아졌는데, 그 연장선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여러 관측이 나온다. 부산을 대표하는 세계적 반도체 소부장 기업인 리노공업의 지분 대량 매각은 부산 제조업 1세대 시대의 종료와 2세대 진입을 알리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향후 지분 매각의 방향에 따라 수도권 또는 글로벌 자본으로 편입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투자 확대 등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거나 핵심 기능 외부 이전 등으로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아울러 지역 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창업 1세대의 고령화와 승계 단절이 점차 표면화되고, 지역 자본시장의 취약점이 드러나면서 대형 자본의 M&A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블록딜이란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매도 물량을 인수할 매수자를 구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장이 끝난 후 지분을 넘기는 거래를 말한다. 매수 여력이 있는 투자사나 기관, 개인 등은 주식 대량 매입을 미리 약속하는 대신 당일 종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매수한다. 장중 주가 급락은 피할 수 있으나 공시 이후 주가가 하락할 확률이 높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