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왼쪽)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사협상 결렬에 따른 입장을 밝힌 뒤 협상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슈퍼 사이클 도래로 역대 최대 호황을 맞았다는 국내 반도체산업이 그에 따른 양지의 따스함보다는 이면에 도사린 거대한 음지의 기운이 더 두드러지는 암울한 국면을 맞았다. 국내 대표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의 성과급 배분을 놓고 노사가 벌이는 첨예한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는 앞으로도 타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당장 2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파업은 노조와 회사만 당사자일 수 없는 문제다. 공식 조정 절차가 아닌 '자율 협상'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20일 오후 삼성전자 노사를 임금 협상 테이블로 모은 건 그 때문이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20일 사측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예정대로 21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후 조정을 벌인 사흘 동안 중앙노동위원회가 제시한 조정안에 노조가 동의했으나 사측이 끝내 거부했다는 게 노조가 밝힌 이유였다. 당초 협상 쟁점은 성과급 규모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조정 과정에서 적자 사업부 보상을 놓고 노사 간 의견 차이가 컸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성과에 대한 보상인 성과급을 적자 사업부에까지 보장할 경우 사업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사는 이번 협상 내용이 국내 산업계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양보의 끈을 서로 놓아버린 듯하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 결렬 소식이 알려지자 당장 청와대가 긴급히 움직이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영업이익에 대해서 이익을 배분받는 것은 투자자가 하는 것”이라며 “이익 관철 노력도 적정한 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란봉투법을 필두로 친노동 정책을 펼쳐온 정부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삼성전자 노조를 향한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에 앞서 김민석 국무총리도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를 언급한 바 있어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노사 합의 결렬 직후 직접 주재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여러 모로 국내 노동계에 새 이정표를 남겼다. 천문학적 초과 수익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놓고 주주와 노동자를 등치시키려는 시도는 그 시작점에 불과했다. 그 시도는 노동자가 회사 초과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면 회사 손실에 대한 비율까지 떠안을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진화했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 필요성 논의로까지 이어지면서 노동계를 둘러싼 논란을 더 키우는 중이다. 문제는 그 사이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그 어떤 이정표도 경쟁에서 도태된 이후의 폐허엔 세울 수가 없다. 삼성전자 노사가 양보의 끈을 서둘러 다시 잡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