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이 역대 최고 수준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종목이 엄청난 실적을 기록하면서 국내 증시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직원들을 상대로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한국 경제가 연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식시장 상승세에서 소외되거나 성과급 지급을 아예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른바 포모(FOMO) 심리가 확산 중이라는 지적이다. 포모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소외 불안 증후군, 고립 공포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27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종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30만 7000원에, SK하이닉스는 224만 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81.19p(2.25%) 오른 8,228.70으로 마감, 사상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연합뉴스
■ 한국과 포모 심리
포모는 마케팅에 많이 활용된다.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해 매출을 올리는 기법이다. 유교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한국 국민들은 유독 체면 차리기, 타인과 비교하기 등에 익숙하다 보니 포모 마케팅에 취약하다는 평가다. 각종 SNS에 특별한 체험을 한 사진을 올리거나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 등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포모의 영향이라는 지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청년들이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는 ‘영끌’, 증시가 호황 국면을 보이자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 가상화폐 열풍 등도 포모 심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은 1000만 관객 영화 기록 등도 한국 국민들이 유독 소외감과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자유로운 만남과 소통이 차단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런 성향이 한층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지난 27일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에선 TSMC와 삼성전자에 이어 세 번째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 반도체 불장과 성과급 후유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불장의 영향으로 코스피 지수는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직장인 등의 대화 주제엔 어김없이 반도체 주식 투자 성공담이 포함된다. 하지만 투자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거나 합류할 여력이 없는 청년 등에게 반도체 활황은 달갑지 않은 뉴스일 뿐이다. 더욱이 코스피 지수는 연일 상승세지만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되레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상승 종목보다는 하락 종목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을 감내하고 있는 상당수 투자자들은 자괴감과 불안감까지 호소한다. 특히 지난 27일 상장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포모 심리가 일정 부분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상품 투자를 위해 2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지난 26일까지 이수한 투자자는 19만 3843명에 달한다.
반도체 기업의 수억 원 대 성과급도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연봉 1억 원을 받는 직원은 올해 총 세전 6억 원에 육박하는 총급여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2024년 기준 박사 신입 연평균 급여가 공공연구기관의 경우 3900만 원에 그치는 것으로 최근 집계되면서 이공계 출신들 사이에서 소득 양극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더군다나 정규직 취업은커녕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성과급만 생각하면 소외감을 느끼고 울화통이 터진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삼성전자 계열사 직원들도 “우린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고 우리도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반도체 성과급 파문이 단순한 포모를 넘어 노노 갈등으로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반도체 성과급이 국내 다른 기업들에게도 연쇄적으로 파장을 미칠 경우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는 화성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 조급함 버리고 자기 속도 유지해야
최근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포모 증후군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동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두려움에 빠져 무리한 매수에 나서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세는 다음과 같다. 우선 타인의 수익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종목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거둔 다른 투자자의 수익률 등을 볼 때마다 감정적인 흔들림을 느낀다는 것. “왜 나만 이렇게 수익률이 낮은 걸까?”라며 자괴감에 빠지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투자 계획을 감정적인 출렁임에 따라 수시로 변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당초 장기 투자와 분산 투자, 여유 현금 보유 등의 전략을 수립했으나 단기적 추격 매수, 특정 종목 집중 매수 등으로 계속 바꾸는 등 투자 패턴이 갈팡질팡하는 유형이라면 포모 심리 때문에 무리한 ‘대박 환상’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게 좋다.
특정 종목을 사지 않았다고 후회하거나 특정 종목을 샀는데 더 오르지 않으면 또 후회하는 등 만족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투자 패턴도 포모 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타인의 수익률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조급한 마음으로 추격 매수를 했다가 작은 조정에도 불안을 느껴 손절한 뒤 재상승할 때 또 후회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우려가 높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포모 심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욕망이나 타인과의 비교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투자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성공을 따라가다 자신의 원칙마저 잃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긴 시간 흔들리지 않는 태도와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타인과 비교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는 조급함 때문에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