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스페인은 지금의 멕시코 일대를 지배하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이후 그곳 주민들은 300여 년간 스페인 식민지로 살아야 했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멕시코에는 스페인 정복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과달라하라라는 이름 역시 그 흔적 가운데 하나다. 원래 이 지명은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의 작은 도시 이름이다. 수도 마드리드에서 동북쪽으로 70k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은 아랍어에 기원을 두는데, 돌이 많은 강 혹은 돌의 계곡을 뜻한다. 실제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에나레스강 주변에는 돌이 많아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
지명은 때론 강물처럼 흐르고, 때론 제국의 깃발과 말발굽을 따라 대륙을 건넌다. 멕시코 과달라하라도 그런 셈이다. 광역권 인구 500만 명이 넘는 멕시코 제2의 도시로, 스페인 식민 개척의 흔적이 지금도 건축과 거리 곳곳에 남아 있어 ‘서부의 진주’로 불린다. 이 도시는 ‘멕시코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만큼 첨단산업이 발달해 국가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중남미 최대 범죄 조직 중 하나인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근거지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첨단 산업단지와 범죄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오늘날 멕시코의 빛과 그늘을 압축해 보여준다 하겠다.
한국인에게 과달라하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도심 한복판의 프란세스 호텔에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1917년 멕시코 각지의 한인 동포들을 만나고 미국 입국을 준비하던 선생은 이곳에 머물렀다. 조국은 일제의 강점 아래 신음하고 있었고, 그는 낯선 땅에서 민족의 미래를 고민했다. 우리 정부는 2017년 호텔 내부에 이를 기념하는 현판을 설치했다.
이제 이 도시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시선이 쏠린다. 과달라하라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개최 도시 가운데 하나로 한국 축구대표팀은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이곳 아크론 스타디움에서 치른다. 오는 12일 체코와 첫 경기에 이어 19일에는 개최국 멕시코와 맞붙는다. 태극전사들은 이미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결전의 순간을 준비 중이다. 약 한 세기 전 안창호 선생이 이국의 땅에서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머물렀던 그 도시에서 말이다. 이번에는 이곳에서 태극전사들의 힘찬 승전보가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