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에서 본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 간 사실상의 종전 합의로 중동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국내 유가가 얼마나 빠르게 안정세로 돌아설지 관심이 쏠린다. 국제 원유 시장의 병목 현상을 야기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는 만큼 당장 국제유가는 고유가 기조가 꺾이면서 급등 압력이 누그러지겠지만, 국제 유가가 국내에 반영되는 시차가 있어 국내 기름값이 중동 전쟁 이전 수준까지 내려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오는 19일 예정된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될 것이라는 소식에 한때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나들던 국제유가도 진정세를 보이는 등 고유가 기세가 꺾인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미 동부시간 기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종전 MOU 서명 직후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공언하면서 국제 원유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MOU 서명 계획을 밝힌 15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84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다만,시장 가격 안정과 실물 공급망 복구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쟁 과정에서 피해를 본 중동 산유국 생산시설이 재가동되고 물류망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국제유가 및 천연가스 도입 가격 전망' 보고서에서 미·이란 간 휴전 또는 종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국제유가는 당분간 배럴당 90달러 이상의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확실성 완화로 단기적으로 유가가 하락할 수는 있겠지만 생산시설 복구와 공급 회복에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며 "연내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0달러대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름값도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3주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해제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를 때는 급하게 오르고 내릴 때는 느리게 내리는 석유제품 가격의 생리상 중동 전쟁 이전 가격을 회복하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가 주유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과 업계 등에 따르면 6월 둘째 주(7∼11일) 전국 주유소 보통휘발유(이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직전주보다 L(리터)당 0.5원 내린 2009.9원이었다. 경유 가격은 0.3원 하락한 20004.8원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 발발 후 급등한 유가는 5월 초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이 L당 2010원을 넘어섰으나, 종전 가능성이 커진 최근 4주 연속 소폭 하락하면서 2000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이런 가운데 유가 급등을 불러온 중동 전쟁이 사실상 종전 수순을 밟고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면 국제 유가가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원유 도입량의 약 70%가 중동산일 정도로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만큼 중동과 호르무즈 해협 등 변수에 민감하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계기로 국제 해상운임과 보험료가 하향 안정화하면서 추가적인 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란) 양측이 일단 사태의 안정적 관리에 합의한 모습"이라며 "국제 원유 시장에 심리적 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 유가가 안정화돼도 국내 소비자들이 체감하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는 국내 유가 결정의 구조적 특징으로서 시차 요인 때문이다. 원유 도입 이후 해상 운송 기간, 정유사의 정제 및 유통 기간, 재고 소진 주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국제 유가가 국내 유가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2~3주가 걸린다.
정부가 이란전쟁으로 인한 급격한 유가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지난 3월 13일부터 전격 시행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언제 해제할지도 관심사다.
정부는 호르무즈 통항 재개로 수급 불안이 해소되거나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이면 최고가격제 종료를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출구 전략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급작스런 최고가격제 종료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 등을 고려해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변수는 이번 종전 합의의 준수 여부다.
현재 중동 정세는 우발적 충돌로도 언제든 긴장이 재고조될 수 있는 상태다. 전쟁 이후 이미 4개월 가까이 도입선 다변화를 추진해온 정유사들이 이번 종전 합의만 믿고 즉시 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에 나서기엔 비용과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사태가 종식돼도 원유 생산·수송 인프라 정비와 해협 내 기뢰 제거, 1000~2000척으로 추정되는 해협 내 선박들의 해협 통과 등 사태의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추가로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여기에 최근 1500원대로 굳어진 원/달러 환율이 원유 도입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 하락 요인을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4월 해협이 일시 개방됐을 때도 국제 유가 하락 폭은 예상보다 작았다"며 "여전히 90달러를 오르내리는 국제 유가도 휴전이 아닌 종전이 돼야 추가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