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에 22억 달러(약 3조 4200억 원) 가까운 수익을 거둔 가운데 관세 정책, 이란 전쟁, 가상자산 등 주요 정책마다 수상한 거래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에는 손을 뗐다며 업무 관련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돈벌이’에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정부 공직자윤리청(OGE)이 공개한 재산 공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계좌에서 이뤄진 주식 거래가 총 2만 1000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관세폭탄을 떠뜨린 이른바 ‘해방의 날’ 전후로 의심스러운 거래가 대거 포착됐다. 특히 4월 8일 트럼프 계좌에선 애플과 버크셔해서웨이 등 우량주를 중심으로 327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매수 금액은 360만달러(약 55억 8000만 원)에 이른다.
바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지금은 주식을 사기에 좋은 시기”라는 글을 올렸고, 당일 관세 유예 조치를 발표하면서 S&P500 지수는 9.5% 폭등했다. 최대 수혜주로 불렸던 애플은 이튿날 15% 이상 급등하며 1988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WSJ는 "거래가 주요 정책 결정 시기와 매번 맞물린다는 점에서 윤리감시단체의 의심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8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계좌에선 하루 만에 연중 최대 규모인 7500만달러(약 1162억 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매수했고 특히 부도 위기에 몰렸던 인텔 주식을 최소 25만달러어치 매입했다. 며칠 뒤 백악관은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명목으로 인텔 지분 10%를 정부가 직접 인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부의 지분 인수 발표 이후 인텔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해 현재 상승률은 당시 대비 370%에 이른다.
이 밖에도 백악관이 데이터센터 규제를 완화하는 ‘인공지능(AI) 행동 계획’을 발표한 당일에도 브로드컴, 아마존, 구글(알파벳) 등 빅테크 주식을 각각 100만 달러 이상 무더기로 쓸어 담은 사실이 드러났다.
중동 걸프국들과의 거래도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지역 기업들로부터 벌어들인 금액만 3억달러(약 4000억 원)에 달한다. 총 20억달러 중 지역별로는 가장 큰 규모다.
트럼프 일가가 소유한 가상자산 기업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 지분 절반을 매각해 벌어들인 수입만 2억 6300만 달러다. 지분 인수 기업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동생인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이 지원하는 법인이다. 이 밖에도 트럼프타워와 골프장 등 부동산 사업으로도 부를 축적했다.
WSJ는 "현직 대통령이 이처럼 막대한 현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자금 유입이 주로 트럼프 외교 정책의 중심에 있는 중동 지역에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지원했다. ‘오일머니’ 중동 우방국들에는 대규모 투자를 압박해 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가 선물한 신형 전용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부윤리청(OGE)에 제출한 2025년 재산공개 보고서에서 지난해 22억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재집권 직전 2024년 신고했던 약 6억 달러보다 16억 달러가량 늘어난 규모다. 가상자산 사업 수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4월 상호관세(국가별 차등관세) 유예 발표를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계좌에서 우량 종목 327개에 대한 대량 매입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 논란까지 제기됐다.
1978년 제정된 미국 연방 윤리법은 대통령에 대해 '이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처분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지는 않았으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자발적으로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자산을 처분하거나 백지 신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 제정 이후 이 같은 전통을 따르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이나 잘못된 점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면서도 "자산 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완전히 맡기며, 그들과 투자와 관련해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 대부분은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법적으로 관리하는 블라인드 신탁에 편입돼 있다.
차남 에릭 트럼프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은 특정 투자 종목을 선택하거나 지시, 승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며 "거래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지 않으며 독립적인 제3자 자산운용사의 투자 결정에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과 그 가족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이해충돌에 관여한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의혹에 선을 긋고 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 주식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운용사를 통해 18차례 사고 판 것으로 4일(현지시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투자계좌 두 곳에 쿠팡 보통주 주식을 담고 거래해왔으며, 전체 자산 대비로는 미미한 규모지만 현재 남은 주식의 액면가는 최대 13만달러(약 2억 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중 주식 거래는 운용사를 통해 이뤄져 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계좌 운용에 본인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한미 외교·통상 분야 중요 현안의 당사 기업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재산상의 이해관계를 가진 상황은 '이해충돌'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류선지 부산닷컴 기자 s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