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조선은 바다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 왜군은 동래성을 무너뜨린 뒤 파죽지세로 북상해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했다. 당시 조선 조정에는 일본이 해전에는 강해도 육지에서는 약할 터이니 지역 거점에서 적을 막자는 방왜육전론(防倭陸戰論)이 팽배했다. 물을 건너오는 적을 뭍에서 막겠다는 전략은 개전 초반 조선을 수세에 몰아넣은 뼈아픈 오판이었다. 처음부터 제해권의 중요성을 깨닫고 왜군을 바다에서 막았다면 역사는 달리 쓰였을 것이다.
세계 패권사는 해양력의 흥망성쇠 역사이기도 하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누비던 바다의 주도권은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해양패권의 꼭짓점에 오르면서 해상 교역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한국은 자유무역의 순풍을 타고 번영의 바다를 순항했다. 원유와 원자재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성장 모델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역의 이점을 극대화한 덕분이다.
막히는 호르무즈, 열리는 북극해. 올해 한국호는 두 바닷길의 도전에 직면했다. 하나는 막히면 위기가 되고, 다른 하나는 열리면 기회가 된다. 6500㎞나 떨어진 중동의 좁은 해협이 흔들리자 환율과 주가, 유가가 요동쳤다. 호르무즈는 한국 경제를 덮친 삼각파도였다.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이라는 자부심은 무참하고, 해양 공급망의 취약성은 뼈아프다. 북극항로 대장정을 위해 22일 부산을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에는 물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미지의 항로에 도전하는 일이 값진 이유는 족적이 쌓이면 끝내 없던 길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호르무즈와 북극해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같다. 한국은 반도국가이기 이전에 해양국가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바다 모두 한국의 운명이 육지가 아니라 바다에 걸려 있음을 일깨운다. 대륙의 끝, 분단국가라는 틀에 갇혀 바다를 국토의 변두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 400여 년 전 방왜육전론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해양력을 키우지 않으면 먼바다의 너울에도 우리의 경제안보가 휘청댈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올해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해상 무임승차의 시대는 끝났다. 없는 길을 뚫어서 갈 때 해양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해양수도의 비전으로 해양수산부, 해사법원, HMM 등이 부산에 집적되는 종국의 목표도 결국 해양강국 도약이다. 대륙을 바라보던 시선을 바다로 돌려 해양력 중심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바로 지금, 이곳 부산에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