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대학판 플랫폼 시대

입력 : 2026-08-24 18:05:27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장제국 동서대 총장

몇 달 전 중국 항저우에 있는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한 임원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생산되는 채소를 플랫폼에 올렸더니 소위 ‘대박’을 쳤다는 일화를 전했다. 과거라면 시골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상품이 온라인 플랫폼을 만나면서 중국 전역의 소비자와 연결된 것이다.

바야흐로 플랫폼의 시대다.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며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좋은 상품만 있다면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는 더 이상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고등교육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은 한 대학에 입학하면 대부분 그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과정 안에서 공부를 마친다. 국제 교류도 소속 대학이 협정을 맺은 제한된 자매대학과의 교환학생이 중심이다. 세계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데 대학은 아직도 하나의 ‘섬’처럼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소비자·생산자 직접 연결

시골 채소도 전국 '대박' 나는 시대

대학, 여전히 한 학교 내에서 교육

네트워크 연결 시대에 뒤처진 '섬'

여러 대학·학생 잇는 '플랫폼 대학'

'학생 선택권 확대' '대학에도 기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상호의존이 갈수록 깊어지는 시대를 살아갈 청년들에게는 아쉬운 현실이다. 기업은 이미 국경이라는 제약이 없이 움직이고 공급망은 여러 나라를 연결한다. 하나의 제품에도 여러 국가의 기술과 인재가 참여한다. 그런데 정작 대학생은 하나의 대학, 하나의 국가 안에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려면 비용 부담이 크고, 개별 대학이 수많은 해외 대학과 일일이 협정을 맺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라도 혼자서 학생들에게 아시아를 아우르는 교육과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플랫폼형 대학’이라는 새로운 발상이다. 여러 대학이 각자가 가진 교육 역량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그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선택한다. 학생의 배움과 경험이 소속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교육 자원과 기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유럽은 일찍부터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간 학생 이동의 장벽을 낮췄고, 온라인 공개강좌(MOOC)는 세계 어디서나 우수한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에라스무스가 주로 제도화 된 대학 간 이동을, MOOC가 온라인 강의의 개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의뿐 아니라 공동학위, 인턴십, 현장 프로젝트, 공동연구, 여름학기, 단기연수 등 각 대학이 가진 다양한 기회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 학생들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을 개별적으로 잇는 ‘1 대 1 방식’에서 여러 대학과 학생을 동시에 연결하는 ‘다 대 다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최근 필자가 속한 대학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대학들이 의기투합해 이러한 실험을 시작했다. 오는 10월 출범을 준비 중인 ‘아시아연합대학’(Asia Alliance University)이다. 학생들이 소속 대학의 경계를 넘어 참여 대학들의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현재 17개국 163개 대학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플랫폼의 성공 여부보다 이러한 방식이 가져올 변화다. 학생의 선택권이 커지면 대학도 선택받기 위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내놓게 되고, 개별 대학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교육은 다른 대학과 협력을 통해 한층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규모나 명성보다 ‘무엇을 잘 가르치고 어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가’가 중요해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시아의 작은 대학도 독창적인 프로그램 하나로 일약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획도 잡을 수 있다. 알리바바에서 이름 없는 시골의 채소가 전국적인 상품이 된 것과 같은 원리다.

한국 대학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류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해외 학생들이 한국 대학의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먼저 접하고, 이후 한국을 찾아 프로젝트와 인턴십 등에 참여한다면 관심이 실제 교육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대학의 플랫폼화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학점 인정과 교육의 질 관리, 등록금 배분, 국가마다 다른 학사제도 등 넘어야 할 장벽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학 간 연결 자체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플랫폼 시대에는 어느 대학에 입학했느냐보다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서 경험하며, 누구와 연결되는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대학도 섬에서 벗어나 플랫폼이 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