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흐센 레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의 자금줄을 끊기 위한 경제전에 전면 돌입에 나서면서 미국과 이란의 경제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자금줄을 끊는 대규모 금융·무역 제재를 예고하자 이란은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를 적으로 간주하고 페르시아만 전체를 봉쇄하겠다고 맞섰다. 양국 간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경제 압박과 에너지 수송망 봉쇄를 둘러싼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23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란에 경제적 D데이가 오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대규모 금융 공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적국을 상대로 지금까지 동원된 최대의 단일 금융 공격”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과 직접 거래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란의 석유 수출과 금융 거래를 돕는 제3국까지 압박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란산 석유를 구매하거나 운송하는 행위, 이란과 금융·상업 거래를 이어가는 행위, 이란 항공기의 입항을 허용하거나 해상 환적과 불법 금융거래를 묵인하는 행위 등을 사실상 이란 정권에 대한 ‘공모’로 보겠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과 거래를 이어가는 국가들을 향해 “이런 일을 지속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배제시키겠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제3국의 이란 거래 차단을 압박했다. 미국은 24일 추가 대이란 경제 제재 계획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란도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모흐센 레자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국영방송에 출연해 미국의 경제 제재에 참여하는 국가는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추가 조치에 나설 경우 “단 한 방울의 석유조차 나가지 못하게 막겠다”고 밝혔다.
이란은 우선 주변국들과 협상을 시도할 것이지만 계획이 실패하면 호르무즈해협뿐 아니라 페르시아만 전체의 석유 수송을 차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레자이 총장은 “우리가 페르시아만에서 석유가 나가는 것을 계속 허용하는 동안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합세해 경제 봉쇄를 가하고 우리 이익을 해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군사 충돌은 줄었지만 경제적 대치가 고조되면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빠졌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만큼 이란이 봉쇄 범위를 페르시아만 전체로 넓힐 경우 국제 유가와 물류 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동 산유국들이 최근 석유 수송 파이프라인과 대체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호르무즈해협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경제 전쟁이 다시 무력 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란에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핵개발 포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란은 대이란 제재 중단과 동결자산 해제, 역내 미군 철수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양측의 요구가 크게 엇갈리고 있고 경제적 대치가 심화하면서 협상은 사실상 동력을 잃은 상태다.
양국의 적대적 관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중동 정세는 물론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