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은 대형마트 안 가세요? 시장에서만 장 보세요?”
2010년대 초반 3년간 유통업계를 취재했다. 대형마트와 SSM의 공세가 본격화되고, 골목상권은 고사 위기를 호소했다. 대형마트 심야영업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의 탄생도 이때다. 버티다 못해 폐업 준비를 하는 슈퍼마켓, 대기업 식자재 매장에 비상이 걸린 도매시장 상인들을 만났고, 매장을 변칙 개점하거나 의무휴업일에도 배짱 영업을 하는 대형마트를 지적했다.
당시 부산 출점을 앞두고 서울에서 온 한 유통 대기업 담당자가 답답하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요즘 누가 전통시장을 가느냐, 당신도 대형마트에서 편리하게 사지 않느냐. 그런 뉘앙스의 힐난이었던 것 같다. 그 때로부터 십수 년, 지금은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홈플러스 지키기를 호소하고 나섰다. 홈플러스는 파산 문턱에서 가까스로 회생 기한을 받고 일부 점포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업계 2위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까지 간 원인은 복합적이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 원대에 인수한 이후 투자금 회수를 위해 자산 매각 중심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점포와 물류센터를 줄줄이 매각했고, 일부는 판 뒤 다시 빌려 쓰는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갔다. 점포는 줄고 비용은 늘었는데, 그 사이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악화됐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골목상권을 지키려고 대형마트를 규제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늘린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쿠팡과 새벽배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유통업체만 키워준 결과였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책이 시대와 산업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과 정책의 보호 대상과 명분이 잘못됐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지켜야 하는 것은 노동자와 지역 경제다. 2012년 유통법이 만들어질 때도 그랬고, 홈플러스 지키기를 말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홈플러스가 문을 닫으면 전국 10만 명 노동자가 생계를 위협 받고 1800여 개 입점 업체와 협력 업체가 손해를 본다고 한다. 그런 현실을 두고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나 온라인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된 소비 패턴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태평할 수는 없다.
기술의 변화가 유통 산업을 바꾸고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양상은 새롭지 않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올리브영과 다이소가 골목마다 생겨나는 사이에 슈퍼마켓과 문방구, 화장품 가게와 철물점은 골목에서 점차 사라졌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주말배송으로 쇼핑이 놀랄 만큼 편리해진 반면 물 한 병, 파 한 단을 사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쇼핑 사막’, ‘식품 사막’도 늘고 있다.
정책은 변화에 취약한 대상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비수도권도 대표적인 예다. 부산 홈플러스만 해도 이번 사태 전에 이미 폐점이 잇따랐고, 백화점도 롯데백화점 마산점에 이어 현대백화점 울산점 동구가 폐점 수순이다. KB금융 분석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점포당 월평균 매출액은 서울이 수도권 평균의 배, 비수도권의 3배였고, 방문객 수는 비수도권이 서울의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유통업은 매출과 대비해 고용이 많은 산업이고, 농수산물부터 공산품까지 다양한 생산자에다 금융, 물류까지 연계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지역의 전통적인 상권을 지키던 백화점의 폐점이 지역 경제 침체의 신호가 되는 이유다. 지방 소도시 핵심 상권에 ‘임대’를 붙이고 늘어서 빈 가게들이 지방소멸을 상징하는 장면인 것도 마찬가지다.
유통 대기업이 합리적인 경영 선택이라는 이유로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 점포를 닫고, 수도권에만 투자를 한다면 쇼핑 사막은 무서운 속도로 번질 것이다. 새벽 배송으로 대다수가 편리해진다고 해서 골목 상권이 고사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내 이웃들이 일자리를 잃고, 여러 가정이 흔들릴 것이다. 거대한 물류센터 바깥에서 거리가, 도시가 텅 비어간다면 그것을 혁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요즘 세상에 누가 대형마트를 가느냐. 새벽 배송이 얼마나 편리한데 규제를 말하느냐. 이런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유통업 정책이 지켜야 하는 것은 특정 기업이나 혁신 기술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파는 노동자와 소비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불편해지고 가장 늦게 회복하는 취약한 사람들이다. 우리 이웃들이 걷고 만나고 밥 먹고 대화하는 거리이고, 내 가정을 지탱하게 하는 일터다.
간판이 하나씩 꺼질 때마다 그 뒤의 얼굴들도 함께 꺼진다. 매출의 숫자나 신기술이 아니라 그 얼굴들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유통법 개정을 기대한다.
최혜규 경제부 부장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