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고백 대신 “탄광에서 다쳤어”…요양소 남은 유골들 [이중의 억압 재일한센인]

입력 : 2026-10-01 16:25:04 수정 : 2026-10-01 18: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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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족 만나도 끝내 병력 숨겨
요양소 내 유골 1만 7860구 남아
재일한센인 유골도 다수 포함 추정
"납골당 찾아 그 삶 생각해 주길"

사진작가 조근재 씨가 촬영한 1960년대 일본 도쿄 국립한센병요양소 다마젠쇼엔 납골당 내부. 일본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사진작가 조근재 씨가 촬영한 1960년대 일본 도쿄 국립한센병요양소 다마젠쇼엔 납골당 내부. 일본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일본 도쿄 국립한센병요양소 다마젠쇼엔의 납골당 전경. 손혜림 기자 hyerimsn@ 일본 도쿄 국립한센병요양소 다마젠쇼엔의 납골당 전경. 손혜림 기자 hyerimsn@

30년 만에 한국의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소식을 수소문하던 도쿄의 친척을 거쳐 겨우 닿은 편지였다. 일본에 간 형이 죽은 줄만 알았다며, 살아 있으면서 왜 연락 한 번 안 했느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재일한센인 최 모(가명) 씨는 답장에 거짓말을 썼다. “탄광에서 다쳐서 손이랑 발이 불편해졌어. 몸이 이렇게 돼 부끄러워 연락하지 못했다. 이런 형을 용서해다오.” 한센병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경남 진주 출신인 최 씨는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건너와 규슈 탄광에서 일했다. 해방 뒤 한센병이 발병해 오카야마현 나가시마아이세이엔에 입소했다. 동생의 편지를 계기로 한국을 찾아 가족과 재회하고 돌아와서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한센병이라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1980년대 아이세이엔 내 재일한센인을 기록한 책 ‘이름도 아름다운 섬’에서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항상 가슴에 바늘이 꽂힌 듯한 통증이 있어요. 그건 제가 한센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거예요. 편지 봉투에 적힌 아이세이엔이 어떤 곳인지 고향 사람들 모두가 눈치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기도합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한센병에 대한 편견은 만연했다. 가족과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고향의 가족과 재회 기회가 생기더라도 최 씨처럼 끝내 자신의 상황을 숨기기도 했다. 강제격리를 규정한 일본의 한센병 정책과 사회적 편견 앞에서 가족관계는 멀어졌고, 많은 이들의 유골은 아직도 요양소에 남아있다.


■ 요양소에 남은 유골들

본보가 일본 후생노동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일본 국립한센병요양소 사망자 2만 7902명 가운데 1만 7860명(64.0%)의 유골이 아직 요양소에 있다.

국적별 현황은 별도로 집계되지 않지만 재일한센인의 유골도 상당수 함께 보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인 입소자가 한때 200명 넘게 있었던 아이세이엔의 경우에는 전체 사망자 3808명 가운데 극히 일부인 49명을 제외한 3759명(98.7%)의 유골이 남아 있다.

살아 생전 혹은 사망 후 한국의 가족 곁에 돌아가거나, 고인의 유지에 따라 국립망향의동산에 이장된 사례도 드물게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수십년에 걸친 수용 생활로 인한 가족관계가 멀어진 것은 물론, 요양소에서 이름을 바꿔 쓸만큼 가족이 사회에서 겪을 차별은 만만치 않았다. 이에 낙인 때문에 귀향을 포기하고, 수십년을 함께 지낸 한센인 동료 옆에서 잠들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 가족조차 반세기 걸린 고백

재일한센인의 아들인 한센병가족소송 원고단 부회장 재일동포 황광남(70) 씨. 황 씨는 한센인이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요양소 납골당의 유골은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재일한센인의 아들인 한센병가족소송 원고단 부회장 재일동포 황광남(70) 씨. 황 씨는 한센인이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요양소 납골당의 유골은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한센병이라고 말한 적 없을 겁니다. 요양소에 입소했던 것도 몰랐을 거예요. 편견 때문에 가족에게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지난 20일 효고현 자택에서 만난 한센병가족소송 원고단 부회장 황광남(70) 씨는 경남 창원과 경북 청도 출신 재일한센인이었던 부모가 한국의 가족에게 병을 알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황 씨 자신도 50대가 되어서야 주변에게 한센병 환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털어놨다. 병을 직접 앓지 않은 아들에게도 반세기가 걸린 고백이었다. 당사자였던 부모는 더욱 쉽지 않았을 터였다.

부모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넘어왔다. 해방 후 다른 가족들과 달리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부모는 일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1956년쯤 황 씨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한센병이 발병, 아이세이엔에 입소했다. 황 씨는 겨우 1살에 요양소 내 보육원에 맡겨졌다. 8살 무렵부터 다시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한센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황 씨는 2016년 일본의 한센병가족소송에 원고로 참여해 2019년 승소하고 보상을 받았다. 이후 강연을 비롯해 한센인 편견 해소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황 씨의 최종 목표는 한센인이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요양소 납골당의 유골은 고향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편지에 거짓말을 썼던 최 씨도 과거 알고 지내던 재일한센인으로, 그의 유골은 요양소 납골당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허들은 높다. 남은 유골에 대해선 가족에게 병력을 알리지 않고자 했을 고인의 뜻을 고려해야 한다. 또 가족들도 현실을 마주하기엔 마음의 장벽이 높다. “지금도 가족에게 폐가 될까 봐, 자신이 죽은 뒤에야 가족에게 연락해 달라는 입소자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장례식에 가족이 와서 유골을 모셔 가지만, 입소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지요. 혹시 가족 중 누군가가 일본의 요양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납골당을 찾아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