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이 넘으신 모친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친은 자주 이용하는 은행 모바일뱅킹 앱에서 이체 비밀번호를 여러 차례 잘못 누르셨는지 이체가 안 돼 큰일이라며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늦은 시간이라 급하지 않으면 다음 날 저녁 만나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다고 말하고, 급하게 이체해야 하면 신분증을 챙겨 내일 아침 일찍 은행을 방문해 보시라 권했다.
노령에 스마트폰 사용을 힘들어하셨지만, 은행에 직접 가는 수고를 덜도록 재작년 모바일뱅킹을 가르쳐 드렸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반복 실습을 해드린 끝에 간단한 이체는 하실 수 있게 됐지만, 모바일뱅킹이 안 되자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은행에 다녀온 모친은 직원으로부터 “혹시 자녀가 없냐”며 “이런 건 자녀분들이 있으면 금방 해결될 문제”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자녀가 없을 수도 있고 멀리 있는 경우도 많은데, 직원의 말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또 한번은 한 지인이 요즘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자꾸 사라져 불편하다고 푸념했다. 그는 현금이 필요한 일이 다반사는 아니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명절 등 현금이 필요할 때 주변에 ATM을 찾아 가려면 20분 가까이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 거래은행에 따라 주변 ATM과 거리가 다른데, 어쨌든 현금을 뽑을 수 있을 때 두둑이 뽑아 놓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많다고 했다. 과장을 좀 한 그의 말처럼 ‘ATM 찾아 삼만 리’는 흔한 일이 됐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금융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은행 창구나 ATM을 찾는 일이 줄었다. 은행 창구를 찾아야만 했던 계좌 개설과 대출, 상품 가입도 이젠 스마트폰만 있으면 가능한 시대가 됐다. 은행권의 디지털 금융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디지털 금융에 익숙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여전히 은행 창구와 ATM을 찾아 나선다. 은행 영업점과 ATM이 빠르게 줄어드는 지방 도시나 농어촌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금융 접근성 악화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은행 영업점과 ATM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의 경우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영업점 수가 약 26% 감소했다. 지방은행도 비슷하다. ATM은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2만 4711대로, 2022년 대비 15.7%가 줄었다. 특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에서 금융 인프라 축소가 두드러졌다.
현금이 긴요한 순간에 높은 수수료도 마다하지 않고 이용했던 편의점 ATM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 철거되고 있다고 하니, 고령층 등에겐 사라진 은행 영업점과 ATM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근엔 금융 노사가 은행 영업점 개점 시간을 내년 4월 이후 오전 9시에서 오전 9시 30분으로 늦추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는 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는 금융산업 변화도 고려됐다고 한다. 디지털 금융 소외 계층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드는 형국이다.
디지털 금융의 발전은 비가역적이다. 이용자의 편의와 공급자의 효율성·수익성의 측면에서 은행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금융 서비스를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모든 소비자가 같은 속도로 디지털 금융에 적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단체들을 중심으로 고령층과 장애인,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디지털 금융 소외를 막기 위해 ‘보편적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대면 창구 이용이 필요한 금융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사막화’는 비옥한 땅이 사막으로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금융에서는 이를 비유적으로 사용해 은행 영업점이나 ATM이 폐쇄되는 등 금융 서비스가 부족해지거나 제공되지 않는 지역이나 상황을 ‘금융 사막화’라고 한다. 금융 사막화는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제한해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지역사회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금융 공공재의 파괴다. 주민들은 금융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고령층 등은 위험에 노출된 비제도권 금융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는 있다. 금융 사막화의 속도를 늦추고 디지털 금융 소외 계층이 기댈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은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몫이다. 시장 논리에 맡겨 인프라 축소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소규모 금융 창구와 이동식 금융 서비스를 확충하고, 지역과 밀접한 지방은행 활성화도 도모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 소외 계층에게 최소한의 금융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대성 경제부 차장 nmaker@busan.com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