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가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대중목욕탕 ‘금샘탕’ 입구에 호기심을 끄는 간판이 걸려 있다. 동네 마트에 다녀오던 중 궁금증을 못 참고 입장하려 했더니 웬걸, 여성 전용이다. 게다가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평범한 직장인에겐 문턱이 높다. 그런데도 문전성시다. SNS에는 재밌는 공간이라는 찬사 일색의 후기가 넘쳐 난다.
〈부산일보〉는 고색창연하게 느껴질 법한 목욕탕에 Z세대가 몰리는 기현상을 19일 보도했다. 자체 굿즈와 제휴 밀크티를 판매하고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젊은 충성 고객이 늘었다는 게 금샘탕의 성공 스토리다. 기성세대라면 목욕탕이 ‘힙’한 공간으로 변했다는 데 고개를 갸웃할 테다. 개성과 희소성을 중시해서 복고풍이나 촌티까지 재해석해 내는 Z세대 특유의 감성일 것이다. 여기에 색다른 경험을 찾는 심리까지 살펴야 이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UX(사용자 경험)가 관건이다. UX는 웹과 앱을 이용할 때 편리함과 유용성뿐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아우른다. 어떤 경험을 남길 것인가는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을 좌우해서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UX의 영향력은 오프라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Z세대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진심이다. 반면 시간과 감정을 들여야 하는 대인 관계가 취약해졌다. 정성을 다한 만큼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거절당할까 두려워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응답이 56%다. 친구가 가장 적은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향에 맞는 체험을 하면 정해진 시간과 비용으로 즐거움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관계의 불확실성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경험 소비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이유다.
풍요의 시대에 ‘소유’로는 타인과 차별화할 수 없게 됐다. 무엇을 경험했는지로 나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라는 의미로 ‘경험 수집가’라는 명명도 등장했다. 지난해 영화를 관람하면서 뜨개질하는 CGV ‘뜨개상영회’가 인기를 얻어 정례화된 것도 남다른 경험을 찾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K팝의 글로벌 인기도 참여하고 교류하는 쌍방향 팬덤 경험의 확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존중과 공정, 선택의 자유와 취향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Z세대가 조용히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관계를 위해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희생하는 일을 당연시했던 과거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 지금의 청춘에게는 그들의 문법이 있다. 그들의 때가 오고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