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이토록 괴랄한 파국이라니

입력 : 2026-10-21 17: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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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디거'의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영화 '디거'의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매년 반복되는 기후 위기와 대형 참사, 무너지는 일상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누가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가?’ 그러나 책임을 따져 묻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책임자는 여럿인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사태가 지나가면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맴돈다.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디거’는 재난을 불러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추적한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법이다.

‘디거’는 3대째 석유 재벌로 살아온 ‘디거 록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최소한의 손실과 최대한의 이익만을 좇으며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인물이다.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 전 지구적 재앙

환경 파괴의 책임자를 찾는 추적기

현실 날카롭게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늘어진 뱃살과 괴팍한 표정의 톰 크루즈

그러던 어느 날,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균열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디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재난보다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그에게 시추를 멈춘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그가 외면한 균열은 거대한 빙하가 되어 유럽 전체를 덮치는 대재앙으로 번진다. 파국의 징후를 알고도 이익을 택한 사람이 바로 디거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디거의 모습은 미국 대통령과 장관들에게서도 반복된다. 대재앙을 수습해야 할 이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장난을 벌이고, 엉뚱한 기도를 올린다. 곳곳에 널린 죽음과 회의실의 소란이 교차하면서, 만나는 건 권력자들의 무능과 탐욕, 거짓말이다. 동물 박제와 모피가 곳곳에 놓인 공간 역시 이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헛웃음이 터지다가도 어느 순간 불편해지는데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의 재난 앞에서도 책임을 미루고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이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조롱의 대상을 권력자들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디거와 권력자들을 비웃던 웃음은 어느새 객석으로 돌아온다. 편리함과 소비를 포기하지 못하고, 익숙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연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값싼 물건을 고르고 편리함을 누리는 ‘우리’ 또한 한통속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넘어, 그 잘못을 가능하게 한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로 옮겨 온다.

다만 이 질문은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정치권력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는 풍자와 소동이 쉼 없이 이어지고, 빠른 전개 속에서 객석의 우리를 향한 질문은 디거나 권력자들만큼 구체적인 장면을 얻지 못한다. 장면의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다음 소동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끌어내는 연출이 세계의 부조리를 선명하게 만들지만, 인물과 상황을 깊이 들여다볼 여지를 좁힌 점은 아쉽다.

이 소란의 한가운데 디거를 연기한 톰 크루즈가 있다. 짙은 남부 억양과 두꺼운 분장 때문에 첫눈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미션 임파서블’의 질주하는 몸도 없다. 무겁게 끌리는 걸음과 불룩한 배, 괴팍한 표정만 남아 있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물의 오만함을 그대로 전한다.

또한 그 오만은 유엔 회의에서 긴 연설을 혼자 끌고 가는 대목에서 ‘말’의 힘으로 터져 나온다. 잘생기고 멋진 톰 크루즈는 없지만 몸의 속도와 표정, 목소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인물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엔딩 크레딧에 비치는 것은 파괴된 세계의 잔상이다.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묵묵히 길을 걷는다. 대재앙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폐허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이어진다고 해서 책임의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웃음 뒤에 남은 불편함 속에서 영화는 다시 묻는다. 재난을 불러온 사람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파국을 가능하게 한 세계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다음 재난을 또 어떻게 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