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봐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영국 런던에서 연수하면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본 부산이 그랬다. 부산은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도시다.
겪어보니 과연 런던은 북유럽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생활비가 비싼 도시였다. 부산시 한 달 생활임금을 훌쩍 뛰어넘는 월세, 높은 외식비, 부산 택시 기본요금과 맞먹는 대중교통 요금까지 물가가 엄청났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직접 마트에서 장을 봤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아픈 일이 있어도 의사를 만나려면 2주 정도는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고, 그마저도 ‘응급’이 아니면 예약이 밀리거나 취소되는 일도 잦았다. 특히 전문의를 만나려면 석 달쯤 대기할 각오를 해야 했다. 체감상 한 달에 한 번은 크고 작은 대중교통 파업이 있어서 외출할 때면 대중교통 동선부터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됐다.
‘느림’과 ‘기다림’에 익숙해질 즈음 돌아온 부산은, 부산 사람이 느끼기에도 꽤 괜찮았다. 혼자 밤에 돌아다녀도 대체로 괜찮은 치안 환경, 비교적 저렴한 대중교통 요금과 외식 물가, 동네에서 예약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전문의,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산과 바다, 강….
1년 만에 돌아온 부산에서는 확 체감이 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 부산을 한 번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또다시 부산을 방문하고 싶어 ‘부산병’을 앓는다는 신조어가 유행한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생활의 편리함과 높은 생활의 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의식 차원에서는 부끄러운 지점이 많다.
‘부산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서 가는 승객이 휘청거릴 만큼 언제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난폭한 운전의 시내버스, 도시철도에서 부딪히고도 “미안하다”고 인사하지 않는 승객들 모습을 보고 낯이 뜨거워졌다. 도시철도 서면역에서는 외국인 커플이 길을 찾느라 서 있었을 뿐인데 주변 승객들에게 계속 부딪히자 당황해하는 모습도 봤다. 아무도 그 커플에게 “실례한다, 미안하다”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런던의 대중교통은 비록 느리고 파업이 잦을지언정 안전하게 운행됐다. 런던에서는 길이든 대중교통 안이든 옷깃이 조금이라도 스치면 누가 잘못했든 서로 “미안하다”고 외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성인이 아니라는 눈총을 받는다.
낯 뜨거워지는 일은 또 있었다. 지난 16일 밤 모처럼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았다. 해변을 걷다 보니 수영문화원에서 주최하는 ‘가을 클래식 음악회’가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들뜬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가을밤, 해수욕장에서 듣는 클래식 음악이라니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은 오후 7시 반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수영구 내 각종 단체장과 이사의 이름이 스크린으로 10분 가까이 소개되더니 급기야 수영문화원장과 수영구청장, 수영구의회 의장이 무대에 올랐다. 돌아가면서 “존경하는~” 으로 시작되는, 으레 하는 인사말을 했다. 공연을 기다리던 관객들과 무대 위 오케스트라는 20분 가까이 들러리를 서야 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였을까. 얼마 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순창장류축제 축하공연 중 가수가 준비한 노래를 다 끝내지 않았는데도 무대에 올라 구설에 올랐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또다시 런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런던 연극·뮤지컬 업계는 매년 여름 런던 중심지인 트래펄가 광장에서 무료 공연인 ‘웨스트 엔드 라이브’를 연다. 현재 공연 중이거나 공연 예정인 작품의 주요 곡을 공연하고 홍보하는 자리다. 공연 사이 사이에 백스테이지에서 사회자가 공연자와 연출자 등을 인터뷰했는데, 이런 대형 공연을 열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협조한 런던 시의원도 인터뷰 대상 중 한 명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직후가 아니라 공연의 일부로 하는 자연스러운 인터뷰였고, 공연의 준비 과정과 올해 공연의 특징이 주 내용이었다. “존경하는 런던 시장” 같은 공치사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터뷰 때문에 공연에 지장이 있지도 않았다.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다. 하지만 이런 도시의 양적·질적 성장에도 여전히 시민 의식은 제자리걸음 같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준비한 행사에서 주최자가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공연을 보는 관객이나 직접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주최자에게 초점이 맞춰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품격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
조영미 사회부 기자 mia3@busan.com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