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예술 붙든 피해자들

입력 : 2026-11-04 18: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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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권위원

1986년 부산 광복동에서 창립된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2018년 2월 19일 문을 닫았다. 창립자인 연출자 이윤택의 성폭력 가해가 폭로된 까닭이다. 유수한 배우들이 그곳을 거친 명망있는 극단이었고, 이윤택 또한 명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성추행 사건을 다룬 1990년 개봉작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각본을 맡기도 했기에 사건의 충격은 컸다. 2018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총 17명의 피해자가 그를 고소했고, 2019년 7월 24일 대법원은 징역 7년을 확정 선고했으며, 복역 후 그는 2025년 3월 22일 형기만료로 출소하였다.

연희단거리패는 훈련소를 방불케 하는 합숙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무대 위의 배역을 마치 내 것처럼 자연스레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를 마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듯한 정서적·육체적 훈련이 필요하다. 더불어 공동 생활을 감수하고 극단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가 품은 예술적 꿈과 성취를 위한 고생의 각오가 되어있는 편이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을 추구한다는 것은 배우 스스로 취약한 상태를 힘겨이 감내한다는 뜻이었다. 가해자는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배우에게 강압적으로 연기를 지적하는 권위적인 교육 방식을 고수했고, 그러한 방식을 예술과 연기에 필요한 규율로 합리화했다. 이 과정에서 연기 지도를 빙자해 여성 배우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만지고, ‘안마’의 명목으로 복수의 피해자들을 강제 추행했다. 재판부는 그의 행위가 문화예술계 커뮤니티에 발동한 유형력(有形力)의 결과, 즉 권력형 성폭력이라 판시했다.

피해자들은 진술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증언하느라 이중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여느 성폭력 사건들처럼 이 일에도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매도하는 2차 가해의 여론이 일었다. 가해자의 예술 활동이 대체 언제까지 봉쇄되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잇따랐다. 여기서 간과된 것은 한때 연극 무대를 힘껏 사랑했을 피해자의 예술이, 가해자의 그것보다 다시금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목도한 한 사람은, 피해자가 자신의 문학으로 언젠가는 가해자에게 맞설 힘을 갖출 것을 마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한 가해자의 행태에 분개했다. 2020년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는 2020년 안전하고 성평등한 연극 제작 환경을 위한 부산 연극계 스탠다드 ‘세이프 온 스테이지(Safe On Stage)’를 만들었다. 그 말은 이런 황망한 피해를 보고 겪고도 자기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연극판으로 돌아오길 마음먹은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예술이야말로 여느 사람들이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곡진한 경지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