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끝내 일어나지 않은 일의 무게

입력 : 2026-11-04 18: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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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더 드라마' 스틸컷. TEO, sunlovetour.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더 드라마' 스틸컷. TEO, sunlovetour.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결혼은 이 물음에 ‘충분히 안다’고 서약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그 서약은 앎의 완성이라기보다, 끝내 다 알 수 없음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로맨스의 외피를 쓴 영화 ‘더 드라마’는 그 약속이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결혼을 서사의 종착지로 삼아왔다. 갖은 소동 끝에 연인이 식장에 서면 이야기는 말끔히 닫히고, 이후의 시간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졌다. 하지만 ‘더 드라마’는 해피엔딩의 문턱에서 정반대로 몸을 틀며 장르 문법과 결별한다. 결혼을 앞둔 연인의 고백이 관계의 지반을 집요하게 뒤흔들기 때문이다.

파국의 도화선은 ‘진실 게임’이다. 엠마(젠데이아 분)와 찰리(로버트 패틴슨 분)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들러리 커플과 만나 ‘살면서 저지른 최악의 일’을 털어놓는다. 더 많이 말할수록 더 가까워진다는 믿음, 곧 친밀함을 고백의 총량으로 셈하는 이 놀이의 전제는 엠마의 차례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결혼 앞둔 커플에게 찾아온 뜻밖의 균열

하지 않은 일도 죄가 될 수 있을까?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쓴 불편한 질문

엠마는 열다섯 살 무렵 학교 총기 난사를 계획했고, 아버지의 총을 들고 등교했다가 끝내 실행하지 않았다는 고백을 어렵게 전한다. 다른 이들이 실제로 저지른 잘못을 꺼냈다면, 엠마가 꺼낸 말은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일어나지 않은 일이 관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다. 가장 정직한 고백이 가장 깊은 균열을 낳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앎은 사랑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키운다. 찰리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엠마에게 그런 추악함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의 피앙세가 총기 테러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그녀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엠마 역시 이 상황이 억울하고 불편하다. 최악의 과거를 말하라고 해서 말했을 뿐인데 이토록 비난받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은 그 일을 머릿속으로 구상했을 뿐 실제로 실행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제 영화는 단순한 결혼식 진행이 아니라, 과연 두 사람이 사랑을 지킬 수 있을지 묻는다.

비극을 재현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사건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그 경계에 놓인 인물이라면, 감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의 행동을 어디까지 이해하도록 관객을 이끌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로맨스라는 장르를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이때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은 엠마의 과거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데, 이는 엠마를 옹호하거나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영화에서 소녀가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숲속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모습,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순간들이 섬광처럼 현재로 끼어든다. 또한 그 파편화된 이미지는 엠마의 기억인지 찰리의 불안이 빚은 망상인지 모호하게 처리된다. 우리는 엠마의 과거를 목격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과거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연출은 참사를 직접적으로 재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피하려는 감독의 선택으로 보인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결혼식이 시작된다. 참석하지 않겠다던 들러리가 나타나 비난의 눈길을 보내고, 엠마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알까 봐 눈치를 보며, 찰리는 빨리 이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여온 의심과 적의는 결혼식을 기점으로 폭발하고 만다. 폭발은 결코 해결이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들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을 인정한 채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겠다는 결단처럼 보인다. 결국 사랑은 앎의 완성이나 과거의 추악함을 캐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 불완전한 관계마저 끌어안겠다는 다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