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떠나는 ‘친박계’ 서병수 ‘친노계’ 박재호, 국회에 남긴 레거시는…

입력 : 2024-05-08 15:30:55 수정 : 2024-05-08 17: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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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박근혜 정부 탄생 이끌어…지방 발전 법안 처리 앞장
박재호, 노무현 정부 탄생 공신…가덕신공항건설법 처리 주도

왼쪽부터 서병수 의원, 박재호 의원. 왼쪽부터 서병수 의원, 박재호 의원.
서병수 의원. 서병수 의원실 제공 서병수 의원. 서병수 의원실 제공

부산의 중진 정치인 2명이 21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난다. ‘친박(친박근혜)계’ 서병수 의원과 ‘상도동계’ 박재호 의원이 그들이다. 30년 안팎의 정치활동을 통해 적지 않은 레거시(업적)를 남긴 이들은 “총선은 더 이상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를 떠나며 새로운 정치활동을 모색하는 이들은 후배 정치인을 향해 “소신 있는 정치를 하라”고 충고했다.

■서병수, 신한국당에서 시작한 정치

서병수 의원은 여권의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다. 1952년생인 서 의원의 정치 입문은 1997년이었다. “해외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회고한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해운대갑 지역이 비어서 곧바로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신한국당 시절이던 당시 해운대기장갑 현역의원은 김운환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인제 의원과 함께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지역구가 비게 되자 서 의원이 기회를 잡았다.

■정치적 레거시 ‘박근혜 정부 탄생’

서 의원은 2000년 해운대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2년 뒤 2002년 손태인 의원의 사망으로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해운대기장갑에 당선되면서 국회에 진입했다. 이후 5선 의원과 부산시장을 지낸 그는 자신의 정치적 레거시로 “박근혜 정부 탄생”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강대 1년 후배인 서 의원은 이른바 ‘핵심 친박’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친박 행보를 시작했고 부산에서 박근혜 지지모임인 ‘포럼부산비전’을 만들기도 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2012년 박 전 대통령이 당 대선 후보가 됐고 그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서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일등공신’이 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 나와 당선됐던 그는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 탄생에 가장 힘을 쏟았다”면서 “부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 정부의 영향”이었다고 말했다.

서병수 의원. 서병수 의원실 제공 서병수 의원. 서병수 의원실 제공

■입법레거시, 지방 재개발·지방 재정 활성화

서 의원은 5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스스로 “정치인보다 행정가가 더 맞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회를 떠나면서도 ‘정치적 레거시’보다 ‘입법 레거시’를 더 강조했다.

서 의원이 의정활동에서 최대 입법성과로 꼽은 법안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사업 추진 난항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하던 이명박정부의 뉴타운사업을 대신해 구도심 개발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 의원은 “뉴타운사업의 경우 사업성이 부족한 지방도시에서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수도권에서도 원주민 재정착 문제 등이 있었다”면서 “8개월 동안 20여 명의 의원과 관련 정부 부처가 모두 참여한 위원회를 이끌면서 해결책을 모색해 결국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

서 의원은 “지방재정 강화에 기여한 지방소비세, 지방소득세 신설도 보람된 입법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17대 국회에서부터 지방소비·소득세 도입을 주장했던 서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입 작업에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의 실세 가운데 하나였던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지방의 독자 재원 확보 대신 국세를 나눠주는 방식을 주장하자 서 의원은 곧바로 비판 목소리를 냈다. 그는 “당 지도부가 지방의 자주재원을 확보해주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수도권 규제완화 이후 지방대책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준비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발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서 의원을 중심으로 ‘세원 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2010년 지방소비·소득세가 도입됐다.

■“대통령 잘못도 바로잡는 의회주의자 돼야”

여의도 생활을 마감하는 서 의원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의회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당 의원이라고 해도 대통령실 등 행정부와는 다른 역할이 개별 의원에게 주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면서 “우리당 소속 대통령에 대해서도 잘못된 점은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국회의원도 전문분야가 있어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부산 국회의원들에게는 “지방이 잘 살아야 국가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 의원은 “총선만 6번을 치렀다”면서 “이제 다시 총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등 향후 정치일정 참여 가능성에 대해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박재호 의원. 박재호 의원실 제공 박재호 의원. 박재호 의원실 제공

■박재호, 상도동계에서 시작한 정치

1959년생인 박재호 의원은 1979년 동아대 재학시절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정치 참여 기회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찾아왔다. 1986년 10월 고교 선배인 이종혁 전 의원의 소개로 서석재 전 의원 비서가 됐다. 서 전 의원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고 박 의원은 ‘상도동계’로 정치를 시작했다.

박 의원에게 정치적 레거시를 묻자 두 번의 대선을 언급했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탄생이 정치인생의 최대 레거시라는 설명이다. 그에게 첫 대선은 1987년 6·29선언으로 치러진 직선제 대선이었다. 1987년 대선에서 YS 캠프에 참여한 그는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부산의 대학생 조직을 맡아 지지선언 등을 이끌었다”는 그는 5년 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정치적 레거시, “노무현정부 탄생”

상도동계의 막내로 문민정부 출범에 힘을 보탠 것은 그는 1999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 친노(친노무현)계로 변신한다.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우연히 이광재를 만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 번 만나봐 달라고 하더라”는 박 의원은 “지방도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노 전 대통령의 말에 곧바로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 국가에 대한 생각과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반반 정도였는데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국가에 대한 생각이 70% 정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멋진 정치인이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한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이 정치 인생 최대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노계가 된 이후 총선에서 세 번이나 낙선하는 등 어려운 길을 걸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회창계가 돼 부산에서 5선 의원이 됐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럼 5선을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쯤 집에 갔겠지”라며 웃었다.

박재호 의원. 박재호 의원실 제공 박재호 의원. 박재호 의원실 제공

■입법 레거시, 가덕신공항건설특별법

박 의원은 입법 레거시로 가덕신공항건설특별법을 꼽았다. 2021년 발의된 특별법에는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등 138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대표발의자는 당시 정책위 의장이었던 한정애 의원이지만 실제로는 부산 민주당 3인방(박재호, 최인호, 전재수)이 주도했다.

박 의원은 “24시간 운영되는 인천국제공항을 보면서 가덕신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당시 호남이나 수도권 의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박 의원은 가덕신공항 건설 추진 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도 충돌했다. 그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언급한 문 대통령에게 “가덕도가 안 되면 나중에 양산으로 돌아와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직언하기도 했다.

‘간선제’였던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바꾼 것도 박 의원이다 새마을금고 중 약 80%는 대의원회의 간선제 방식으로 이사장을 선출해 부정선거, 유착관계 등의 문제가 있었다. 박 의원은 새마을금고법을 개정해 이사장을 다른 임원과 동일하게 총회에서 회원 투표로 선출하고 선거 관리는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게 만들었다.

■“권력에 줄서는 의원 되지 말아야”

박 의원은 22대 국회에 새로 진입하는 정치인들에게 “권력에 줄 서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정당의 주류였던 상도동계에서 벗어나 진보정당의 ‘소수 개혁파’ 친노계를 선택했던 박 의원은 “진보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정치가 바르게 간다”면서 “정치적 우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줄서는 의원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수도권 중심의 사고가 뿌리깊이 박힌 엘리트주의자’를 우리 정치가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생각이 없는 엘리트들이 아직 우리 정치권에 많다”고 지적한 그는 “400만 도시 인프라를 갖춘 부산이 대한민국의 양대 축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4·10 총선에서 낙선한 박 의원은 “이제 총선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0여 년의 정치 인생에서 국회와의 인연은 마감한다는 설명이다. 그를 마지막으로 ‘상도동계 현역의원’은 사실상 맥이 끊기게 됐다. 아직 향후 계획을 정하지 않았다는 박 의원은 다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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