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까지 부산에서 신고된 ‘교제폭력’ 건수가 5453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정작 구속률은 수년째 1%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제 관계 특성상 경찰이 강제로 피·가해자를 분리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워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5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부산에서 신고된 교제폭력 건수는 총 5453건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 신고된 3453건에 비해 무려 57% 늘어났다. 부산에서 교제폭력 신고는 2021년 3144건, 2022년 4347건, 지난해 4580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구속률은 1%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2021년 1.5%, 2022년 1.2%, 지난해 0.4%, 올해 1.3%로 검거를 한다 해도 구속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다.
늘어난 교제폭력은 ‘교제 살인’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1월 부산진구 한 오피스텔 9층에서 20대 여성이 떨어져 숨졌다. 당시 폭행과 스토킹 등을 일삼은 전 남자친구가 집에 찾아온 상태였다. 지난 9월 연제구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여자친구인 20대 여성을 살인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교제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부산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 관련 질의가 집중됐다.
당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연제구에서 일어난 교제 살인 사건에 대해 “피해자는 이미 세 번 이상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B 등급으로 분류돼 있었다. A 등급으로 두고 관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지난 7월 이미 경찰의 긴급 주거 지원을 통해 가해자와 이격된 적도 있다. 8월 25일 마지막 신고를 받고 피해자를 설득해서 긴급 주거 지원이나 관계 기관 보호 조치를 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관련 특별법이 없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부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표준영 여성보호계장은 “교제 관계에서의 초기 폭행은 단순 폭행죄로 분류돼 기소를 한다해도 주로 기각이 되고 구속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피해자 보호, 분리 조치, 가해자 처벌 등도 관련 법 규정이 없는 현재로서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거나 원치 않는 경우 강제로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특별법 제정 없이는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제폭력 관련 특례 법안은 지난 7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둘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경찰대 한민경 행정학과 교수는 “여러 차례 피해자가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용서로 무마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면 교제폭력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교제폭력은 남녀의 이슈가 아니라 폭력적인 가해자가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 약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며 “피해자가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더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경찰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