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신공항 조감도.
정부가 국민 앞에 약속한 가덕신공항 공사 기간 번복에 군불을 때면서 정작 재입찰은 해를 넘길 태세다. 건설사에 휘둘려 이미 1년 이상 허비해 놓고 공식 검증한 공기마저 주먹구구식으로 늘린다면 자칫 정부 스스로 부적격 판단한 현대건설 설계안보다 개항이 밀릴 수도 있다. 동남권 숙원과 국가균형발전이 걸린 국책사업을 두고 정부 의지와 책임을 따져 묻는 국민적 비판도 거셀 전망이다.
18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 가덕신공항 건설사업 정상화 방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은 아직 함구하고 있다. 다만, 정상화 방안에 부지 조성 공사 기간 연장안이 포함된다고 밝혀 공기 연장은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지난 4월 28일 입찰 조건의 공사 기간인 84개월(7년)을 임의로 어기고 108개월(9년)로 기본설계안을 제출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후속 재입찰 절차는 6개월이 넘도록 시작도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10월 28일 수의계약 대상자로 선정돼 기본설계에 착수했다. 앞서 두 차례 유찰로 공기를 72개월(6년)에서 84개월(7년)로 변경한 뒤 다시 입찰 공고를 낸 건 지난해 7월 31일이다. 당장 재입찰 공고를 해도 15개월 이상 늦어진 셈이다.
게다가 국토부는 건설업계 요구 등을 이유로 재입찰에서 공기를 100개월 안팎으로 1년 이상 연장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건설의 108개월안에 가깝고, 허비한 기간과 향후 행정 절차를 고려하면 개항은 오히려 더 밀릴 수도 있다.
정부 용역을 통해 안전성을 충족하고 확정한 공기를 연장하는 근거와 절차도 명확하지 않다. 정부는 1년 8개월 동안 153억 원을 투입해 기본계획 공식 용역을 진행하고,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를 더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검토해 84개월 공기를 수립해 고시했다. 반면 현대건설 측은 연약지반 안정화에 17개월 등 총 24개월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활주로 부지의 추가 시추 조사는 한 차례도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84개월 조건에 동의해 독점적 지위를 얻은 다음 안전을 핑계로 국가계약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국토부가 실제로 100개월 안팎으로 공기를 연장한다면 공식 절차를 거쳐 검증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공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다. 심지어 정부가 제시한 공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단한 현대건설의 공기 연장안을 이제 와서 정부가 수용하는 꼴이 된다.
가덕도허브공항시민추진단 이지후 대표는 “국감에서는 현대건설 제재를 검토한다면서 재입찰에서 100개월 안팎을 제시한다면 국토부가 현대건설의 책임을 면피해 주는 상황”이라며 “부울경 시민들을 우롱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정부가 신속히 재입찰 공고를 하고 착공과 개항에 속도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84개월은 정부가 전문가들과 안전성을 검증한 공사 기간”이라며 “설계와 공사 과정에서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