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와 산업부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국 15곳에 국가첨단산업 벨트(총 4076만㎡)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5곳 중 수도권은 경기도 용인이 유일해 산단 수에서는 지방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사업 규모면에서는 이날 국가첨단산업 벨트 발표에 포함된 지방 14곳이 사실상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들러리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이가 컸습니다. 면적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무려 710만㎡로 가장 넓었고, 사업비도 20년간 300조 원에 이르렀습니다. 나머지 14개 비수도권 산단에는 10년간 60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정부 예산이 아니라 삼성의 민간투자입니다만 산술적으로 용인 한 곳에 10년간 150조, 나머지 14개 산단 한 곳당 평균 4.3조 원입니다. 약 35배 차이입니다.
아시는대로 2월 28일 미·중 패권 경쟁이 반도체로 옮겨 붙어, 미국이 반도체법 하위 규정에 자국 보조금을 지원받는 반도체 제조 기업의 중국 신규 투자 제한, 초과이익 환수 등의 불공정한 조건을 달았지요.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반도체 기업의 투자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국내 반도체 생산 기반 확충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 등 국내 기업들의 요청도 있었을테고요.
국가 차원의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반도체가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간 기업의 발표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지방 산단을 끼워넣기 식으로 생색만 낸 것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지켜야 할 정부 역할을 포기한 것 아닐까요? 이런 행보는 이미 포화 상태인 수도권 밀집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지방 소멸 속도는 더 앞당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나머지 14개 지방 산단 중에도 충청, 호남, 대구·경북에 각각 4곳씩이었고, 부산·울산·경남과 강원권은 1곳씩에 그쳤습니다. 대부분 삼성 사업장이 있는 곳 위주로, 삼성의 계획에 보조를 맞춰 정부가 첨단산단 조성을 발표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약 1000만 인구의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한 부울경에, 새로 조성할 첨단산업 국가 산단이 방위 산업과 원자력 산업 중심의 창원 산단밖에 없다는 정부의 시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부울경을 수도권에 대응하는 남부권 중심 지역으로 만들겠다던 윤 대통령의 공약이 말뿐이었던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위기 신호가 갈수록 커지면서 정부와 정치권 곳곳에서 ‘수도권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서라도 국가 경제 기반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는 것 같아 비수도권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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