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꽃 개화가 예년보다 열흘 이상 빨랐다는 소식이 얼마 전입니다.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돌림노래 하듯 순서대로 꽃망울을 터뜨리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거의 동시에 모든 봄꽃이 대합창을 불렀습니다. 한 번에 모든 봄꽃을 보는 게 장엄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고 반기기도 했지만, 계절과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 무언가 변고가 생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깊은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자신의 SNS에 얼마전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꽃은 일찍 피지만, 기온 상승에 적응하지 못한 벌은 뒤늦게 당도한다. 벌과 곤충같은 수분매개자가 필요한 과실수들에게는 불길한 소식이다. 그리고 가뜩이나 벌과 곤충의 1/3이 멸종되었거나 멸종되는 가운데, 꽃을 잃어버린 곤충들에게도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오랜 세월 함께 공진화해온 시간의 역사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벌, 곤충, 새와 같은 동물들에게도 생존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당연한 비보다. 또 꽃이 일찍 피고 잎이 일찍 나오면서 나무들의 생장 기간이 전체적으로 길어지고 있는데, 이는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대수층까지 고갈되는 상황에서 이 소식은 앞으로 더 많은 나무들이 죽어나갈 가능성을 뜻한다. 식물은 물을 빨아들여 다시 공중으로 내뿜는다. 대기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과학자들은 기후 혼돈의 가능성을 높이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더 나아가, 꽃이 일찍 피면 수시로 나무와 작물들이 냉해를 입게 된다. 프랑스의 포도나무에서부터 한국의 과실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이른 봄 때문에 냉해가 발생하고 있다. 냉해의 상처는 식물의 생장 리듬을 교란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 2월까지 경남 지역 양봉농가 피해를 조사한 결과 약 70%의 벌이 죽거나 사라졌다는 오늘 뉴스도 그런 점에서 심상찮습니다. ‘세계의 곡창’이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1년 넘게 지속돼 가뜩이나 식량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 피해가 유럽을 덮칠 것이라는 예보도 나옵니다.
온난화를 급속히 줄일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데,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산업부문의 2018년 대비 2030년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8%로 낮추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을 10일 의결했습니다. 업계 부담을 낮춰준다는 명분입니다. 대신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유지한다는 건데, 산업계의 낮아진 부담을 대신하겠다고 밝힌 원자력발전, 국제감축,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 등의 방안이 현재로선 곧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단계여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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