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등교 시간에 학교 옆 어망업체가 하역 작업을 했고, 하필 굴러간 화물이 등교 중인 아이를 덮친 것 아니냐.”
4월 28일 영도에서 발생한 스쿨존 초등생 사망사고를 두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가 봅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을 뿐이라는 시각입니다. 결국 이런 사고와 참사는 그저 불행히도 우연히 발생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 기자가 쓴 기자일기를 보니 우연이 아니라, 이번 사고가 아니었어도 언제 어디서든 유사 사고는 발생했을 것이라는 ‘필연의 징후’가 감지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화물 하역장소를 비추던 단속카메라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봤더라면, 불법주정차를 단속해 달라는 학교 측의 1년 전 공문에 영도구청이 최소한 시선유도봉이라도 설치하거나 등하교 때만이라도 단속을 충실히 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없었을 거라고 기자는 말합니다. 이번 사고 지점 외에도 주거지와 연결된 좁은 길은 차도와 인도 구분도 없고, 영도구 곳곳에 급경사를 접한 학교가 산재합니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최시형은 “아이들을 한울님같이 생각하라”고 했답니다. 해월의 외손자 정순철(‘엄마 앞에서 짝짜꿍’ 작곡), 동학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 등이 조직한 색동회가 어린이 운동을 주도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하느님처럼 대하고 있을까요?
어른을 성인이라 부르며, 어린이를 미완성의 존재로 보는 시각이 만연합니다. 어른들의 가르침과 지도를 꼭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라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코스를 정해 ‘학원 뺑뺑이’를 돌립니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과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보며 부모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아이들은 지쳐갑니다.
오늘 [2030칼럼]은 이렇게 성장한 2030세대의 불안과 우울이 빚어낸 한 현상으로 우울증과 자살, 마약을 다룹니다. 마약사범 단속, 우울증 갤러리 폐쇄 같은 조치가 근원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삶의 재미를 누릴 여유와 기회를 박탈한 채 일찍부터 그들을 경쟁에 내몰아 채근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각박한 세상을 만든 사회구조의 협력자로서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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