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어린이를 제외하고, 200mm 이하 신발을 신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수십 수백 개씩 오르내려야 하는 경우 계단 폭이 발길이보다 짧다면 자칫 잘못 디뎠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발을 비틀거나 앞꿈치에만 힘을 실어 조심조심 내디딜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 동구 증산로 어느 산복도로 계단을 보니 계단 폭이 200mm에 불과하더랍니다. 산복도로 주변으로는 노인 인구 거주율이 높은데 어르신들이 다니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여간 불안한 게 아닙니다. 산복도로 주변 구청들은 산복도로 주민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경사로 엘리베이터나 모노레일을 설치해 관광객들에게까지 명물로 알려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동구 초량 168계단에 설치된 모노레일은 잦은 고장 끝에 7년 만에 철거하기로 결정됐다 합니다.
동구청은 최대 42도에 이르는 급경사 구간을 하루 평균 300회 운행하면서 시설 노후화가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문득 168계단 주변에 수십 년 살면서 자녀들 키워 출가시키고 남아 계신 어르신들의 무릎이 떠올랐습니다. 쇳덩어리 기계도 7년을 겨우 버틴 168계단을, ‘아프다, 힘들다’ 소리 한 번 없이, 파스 몇 장, 진통제 몇 알로 견디며 수십 년 묵묵히 오르내렸을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 말입니다.
2015년 <부산일보>가 산복도로 순회 교통수단인 ‘만디버스’를 기획하며 고민했던 점은 지역민의 주거 만족도와 관광의 평화로운 공존이었습니다. 거주민이 엄연히 사는 마을을 관광객들이 담장 아래까지 들락거리며 동물원 둘러보듯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산복도로 관광 정책의 방향도 당장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 둘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관광객도 자연스럽게 몰려든다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산복도로 계단의 폭이나 높이가 들쭉날쭉이어서 주민들의 보행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오늘 보도는 매우 소중합니다. 영도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장미계단길에서 가장 높은 계단 하나의 높이는 무려 45cm에 이렀습니다. 평균 높이도 25cm에 이르러 영도구는 평균 계단 높이 18cm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서구는 지역 내 비정형 계단을 전수조사하기도 했다네요.
아무쪼록 어느 곳에 살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서 보행과 이동의 자유가 위협받는 일은 없도록 부산시와 구청들이 협력해서 대안을 찾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부산을 만든 뿌리 중 큰 줄기가 저 산복도로에서 오늘도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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