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첫날인 20일(현지 시간) ‘에너지 규제를 풀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제조업을 되살려,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며 즉각적인 실행 조치에 들어갔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을 고물가의 주범으로 지목, 취임 첫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해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물가를 낮추고 전략비축유를 다시 가득 채우며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발 석유·가스의 생산과 수출을 늘려 에너지 패권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이다. 특히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대해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의 석유와 LNG를 더 구매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를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맞아 국내 탄소 중립 정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산 석유 수입이 늘어나면 가격 하향 안정화로 국내 정유업계의 경우 일부 수익성 개선이 점쳐진다. 최근 국제 유가가 미국의 러시아 에너지 기업 제재 여파로 큰 폭으로 오르면서 서울의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대를 넘어선 상태인데, 원유 가격 안정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이날 3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0.8% 하락했고,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1.3% 하락했다.
다만 고환율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 전량을 수입하는 국내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환차손(환율 상승에 따른 손실)으로 재무구조가 악화할 수 있다. 유가가 하락해도 환율이 높으면 그 효과가 상쇄되는 셈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도 부담 요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을 포함한 무역 상대국들의 관심사인 관세정책에 대해 “미국의 노동자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우리의 무역 체계의 전면 개편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관세와 수입세, 외국의 원천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징수할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세금을 걷는 것처럼 관세를 걷을 별도 기관을 설립하겠다는 말이다.
그나마 이날 각서에는 즉각적인 관세 부과 계획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신 백악관에서 진행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25% 관세에 대해 “2월 1일에 (부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구두로 예고했다. 자신의 보편 관세 공약에 대해서도 “그것을 조속히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