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청 사천에 있는데, ‘대전서 연구개발’ 웬말

입력 : 2025-04-16 20:40: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대전 의원 주도 연구본부 신설 법안
대선 정국에 수면 위 부상 가능성
지역사회 15일 “법안 철회” 촉구
핵심 기능 분산 땐 ‘속 빈 강정’ 전락
사천 개청 취지 균형발전에도 역행
첫 기념식도 과천 개최 주민 반발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는 항공국가산단 사천지구. 부산일보DB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는 항공국가산단 사천지구. 부산일보DB

경남 사천시에 들어선 우주항공청이 터를 잡기도 전에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사천시 지역사회와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대전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발의된 ‘대전 연구개발본부 신설 법안’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내달 첫 우주항공의 날 행사마저 경기도 과천시에서 열리는 것을 놓고 사천시 민심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6일 사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황정아(대전 유성구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은 총 22명, 이 가운데 7명이 대전 의원들이다.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우주항공청에 우주항공기술의 연구개발 및 우주항공산업의 육성·진흥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본부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 문구를 ‘우주항공기술의 연구개발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본부의 소재지는 대전광역시로 한다’라고 바꿨다.

현재 사천 우주항공청에는 280여 명의 인력이 근무 중이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건 R&D 부서 인력으로 전체의 46% 수준이다. 개정안은 사실상 우주항공청 인력의 반을 떼서 대전시로 보내겠다는 안이나 다름 없다.

국회 과방위 소위원회에서 표류하던 이 법안이 뒤늦게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조기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부터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지역마다 대선 공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법안이 재추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사천시의 우려도 커지는 실정이다. 지역 사회와 시민단체는 지난 15일 재차 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서는 중이다.

우주항공 전문가들은 인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도 모자랄 판에 연구개발 부서만 대전으로 분리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애초에 사천시에 개청한 취지인 지역균형발전과도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주항공 전문가는 “우주항공청 목적 자체가 R&D를 기획하고 정책을 세우는 것인데 연구개발본부를 떼서 옮기겠다는 건 기획과 정책 기능을 옮기는 것과 같다”면서 “사실상 사천에는 행정 부서만 남기겠다는 건데, 이는 상당히 무리한 요구”고 비판했다.

사천시가 이처럼 우주항공청과 관련한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개청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노골적으로 우주항공청의 사천시 개청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우주항공청의 핵심 기능을 다시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선 정국에서 불거진 셈이다.

여기에 우주항공청 개청을 기념해 개최되는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마저 사천시가 아닌 경기도 과천시에서 치르기로 하면서 지역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우주항공청 개청일인 5월 27일을 국가 기념일인 ‘우주항공의 날’로 지정했다. 내달 27일이 첫 번째 행사여서 사천시에서는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첫 기념식을 사천시가 아닌 엉뚱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정작 사천시에서 열리는 건 천체사진전, 물로켓 대회 등 소소한 부대 행사가 전부다.

박종순 사천시민참여연대 상임대표는 “국가 우주항공산업 기술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이기주의에 동화돼 대전으로 (연구개발본부를) 가져가겠다는 저의는 용납할 수 없다”며 “프랑스의 툴루즈와 같은 우주항공복합도시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적극 협조해도 모자랄 판에 기능을 도로 가져가고 첫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마저도 경기도에서 치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