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건설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시의 공공기여협상제가 유독 높은 수준의 공공기여량을 요구해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개발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시도 토지가치 상승분의 60%를 요구하는데, 부산시만 100%를 내도록 못을 박아 투자자들이 부산을 외면하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공공기여량을 완화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든 만큼 투자 활성화를 위해 부산시도 조례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30일 부산시에 따르면 국토부는 공공기여협상제 공공기여량을 토지가치 상승분의 70% 이내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부산시 등 전국 지자체에 배포했다. 공공기여 부담이 지나치게 커 사업성이 낮아지면, 개발사업이 연기되거나 무산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공공기여는 국토계획법에 명시돼 있지만 세부 사항은 일선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다. 부산시는 민간사업자와 협상을 진행해 지구단위계획을 바꿔주면서 용도 변경 전후 토지가치 상승분의 100%를 공공기여로 내도록 조례로 못 박아놨다. 하지만 서울시는 60% 수준으로 공공기여를 받고, 인천이나 광주 등도 서울을 따라 60% 안팎으로 공공기여량을 정한다.
업계에서는 부산시가 유독 높은 수준의 공공기여를 요구해 공공기여협상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의 한 시행사 임원은 “다른 지자체 공무원들과 공공기여협상제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부산시 요구 수준을 듣고는 ‘공무원 입장에서 봐도 놀랍다’고 할 정도였다”며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감당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경기에 수백, 수천억 원씩 공공기여를 내야 한다면 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행사 관계자는 “공공기여 문제로 사업 추진이 늦어지면 지역 경제에 악순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렇게 상당한 규모의 공공기여 금액은 결국 분양가를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에 실수요자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부산이 유독 가혹한 공공기여 잣대를 고수한다면, 투자자들이 서울이나 인천을 두고 굳이 부산으로 향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부산시는 국토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공공기여 한도 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여 한도를 낮춘다면 얼마나 낮출지가 핵심이지만, 공공기여 협상이 진행된 사업지에 소급 적용할지 여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부산에 공공기여협상제로 개발이 추진되는 곳은 해운대구 옛 한진CY 부지, 기장군 한국유리 부지, 사하구 옛 한진중공업 부지, 남구 부산외대 부지 등이 있다. 이 중 속도가 제일 빠른 곳은 공공기여 1호 사업 대상지인 해운대구 한진CY 부지로 오는 7월께 아파트 분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는 공공기여 조건으로 단지 인근에 창업시설인 유니콘 타워와 수영강 휴먼브릿지 등을 짓는다.
부산시 관계자는 “관계 부서를 모아 쟁점을 정리하며 논의를 하고 있다. 공공기여량을 줄이면 주민들이 받는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며 “국토부 가이드라인을 따라 공공기여량을 완화한다면 이미 협상이 완료됐거나 협상이 진행 중인 사업지까지 소급 적용할지 부분 등에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