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성찰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15일 부산 수영구 액터스소극장에서 만난 이성규 연출가의 말이다. 이 연출가가 대표를 맡고 있는 부두연극단이 오는 27일부터 무대에 올리는 ‘터널 속의 새’는 올해 세 차례 계획하고 있는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 두 번째 작품이다. 1984년 창단한 부두연극단은 현재 활동하는 극단 중 부산 최고령이다. 지난해 40주년을 맞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뒤늦게 ‘생일 공연’을 올리고 있다.
극단뿐만이 아니다. 1949년 태어난 만 75세의 이 연출가 역시 지역 최고령 연출가로 여전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이 연출가는 김문홍 극작가(45년생)와 함께 작가와 연출가로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추며 부산 연극을 지키고 있는 양대 산맥이기도 하다.
이성규 연출가는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해 실존적 문제를 다룬 작품에 천착해 왔다. 연극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부조리 전문가’로 이름이 났다. 이번 작품 역시 존엄사를 소재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는 '이성규표 연극'이다. 이 연출가는 ‘터널 속의 새’ 기획 의도에 대해 “단순히 존재가 사라지는 죽음을 넘어서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어떤 방식이 사자가 존엄을 지키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극작가 팔로마 페드레로의 ‘터널 속의 새’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유명 극작가 엔리케가 어릴 적 헤어진 누나 암브로시아를 만나 삶의 마지막을 극적으로 ‘연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엔리케의 광기가 펼쳐지고, 그 광기를 다스리며 안식으로 이끄는 누나 암브로시아의 지혜로운 헌신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부두연극단의 ‘터널 속의 새’는 우리나라 초연 무대이다. 그만큼 참고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작품의 핵심을 정리하고 공연 길이를 정하고 무대를 구상하는 등 연출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평소 실존적 문제에 관심이 많던 이 연출가가 눈여겨보고 조금씩 구상을 해 둔 터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작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공연을 함께하기로 한 배우들이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중간에 몇 차례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이 연출가는 “그래도 대학에 관련학과가 여럿 있는 부산은 좋은 배우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어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젊은 연극배우들에게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없는 상황은 항상 고민거리”라며 극단 대표로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두연극단의 ‘터널 속의 새’는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액터스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김경수와 우명희, 길수경, 이주현 배우가 출연한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시. 관람료 일반 3만 원, 대학생 2만 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