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서 연이어 발생한 아파트 화재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잇따르면서 여름철 에어컨 사용 폭증 등으로 인한 화재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독 올해 에어컨 화재로 인한 사망 사고가 급증하면서 냉방기기 장시간 사용, 전기설비 과부하, 주거 구조의 한계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월 20일 기록한 기존 최고치 97.1GW(기가와트)를 넘어 올해는 최대 97.8GW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난 8일 최대 전력 수요는 95.7GW로 역대 7월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폭염이 일상이 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선 전기 요금 부담에도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두는 생활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인버터 기능이 탑재된 에어컨이 보편화되면서, 실내 온도가 설정값에 도달하면 실외기 작동이 멈춰 전력 소모가 크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며 ‘24시간 가동도 괜찮다’는 사용 습관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화재 발생 건수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부산 에어컨 화재 건수는 △2021년 16건 △2022년 25건(사망 4건) △2023년 34건 △2024년 45건(사망 1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콘센트에서 비롯된 화재는 에어컨보다 더 많았다. △2021년 36건 △2022년 36건 △2023년 43건 △2024년 41건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지난달과 이달 초 부산진구 개금동과 기장군 기장읍 아파트에서 연이어 발생한 아파트 화재에서는 ‘멀티탭’이 주요 발화 원인으로 확인됐다. 개금 아파트에서는 거실 컴퓨터와 전자기기를 연결한 멀티탭에서, 기장 화재는 화재 당시 작동 중이던 스탠드형 에어컨이 꽂힌 멀티탭의 전선 단락으로 불이 시작됐다.
일상화된 ‘과부하 충전’ 습관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노트북, 전동 스쿠터 등 동시 충전을 위해 한꺼번에 여러 기기를 멀티탭에 꽂아둔 채 잠들거나 외출하는 일상적인 습관은 여름철 화재를 부르는 대표적인 부주의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전기 원인으로 발생한 화재가 사망 사고로 이어진 데는 노후 아파트 구조가 만든 ‘대피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13일 발생한 북구 만덕동 아파트 화재는 현관 출입문 옆 작은방에서 불이 시작돼 출입구 쪽으로 번지며 탈출이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불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숨졌다.
재난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 관계자는 “국내 아파트 구조상 현관 바로 앞에 거실과 방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출입구 화재 시 내부는 사실상 고립된다”며 “특히 수면 중 화재는 감지와 반응 시점이 느려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초기 대응을 위해 공간 특성에 맞는 적응성 감지기 설치를 확대하고, 하향식 피난구나 스프링클러 같은 대형 설비 도입이 어려운 구축 아파트의 경우에는 실생활 밀착형 화재 예방 대책이 현실적이고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임옥근 동아대 경찰학과(화재안전) 교수는 “비용과 구조적 제약으로 근본적인 설비 개선이 어려운 구축 아파트에는 공간 특성별로 적응성·아날로그 감지기를 설치하거나 전기 안전 관리, 일상 속 부주의 차단 같은 ‘생활형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