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일. 처음엔 회사 선배로부터 우스갯소리처럼 듣게 됐다. “만화 영화가 일종의 K무당 이야기인데, 여자애들 3명이 아이돌 그룹인데 악귀를 잡으러 다니고, 근데 그 악귀가 남자 아이돌이고….” 다음엔 친구가 “정말 재미있다”며 호들갑스럽게 한참을 떠들곤 유튜브에서 대표곡까지 찾아 들려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심드렁했다. 마지막엔 초등학생 아들이 금요일 저녁에 꼭 같이 봐야 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강력 주장해 함께 시청하게 됐다. 결과는 대만족!
이미 예상했겠지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줄여서 ‘케데헌’. 올여름 가장 핫한 콘텐츠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넷플릭스 역대 흥행 영화 2위 기록을 만들었고, 스토리보다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영화의 배경인 한국, 서울을 상징하는 각종 굿즈까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현재 10억 달러(약 1조 39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받는다고 한다. 놀랍고, 자랑스럽다.
‘케데헌’은 특히 OST 곡들이 하나같이 귀에 꽂히는 듯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영화 속 아이돌 헌터스가 부른 대표곡 ‘골든(Golden)’은 이달 들어 글로벌 음악 차트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 시간) ‘골든’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기록했다. 빌보드는 이를 두고 “‘핫 100’ 차트를 정복한 K팝과 관련된 아홉 번째 노래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부른 첫 번째 1위 곡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앞서 이달 1일에는 ‘골든’이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1위에 올랐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2012년 같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이후 13년 만이었다.
‘골든’을 따라 부르는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의 ‘커버 챌린지’ 동영상이 쏟아지는가 하면, 북미와 영국 등에서는 오는 23·24일 1100여 개 이상의 영화관에서 ‘싱어롱 상영회’(영화 속 음악을 관객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상영 방식)로 ‘케데헌’을 상영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덕분에 넷플릭스는 속편 제작과 영화 실사화, 뮤지컬 제작까지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 관람객들의 대기줄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식 때문일까. 넷플릭스는 완구 등을 포함한 상표권도 단독 출원하며 사업 확장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물론 넷플릭스가 ‘케데헌’의 수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꽤나 배가 아프지만, K팝을 포함한 K컬처의 세계화를 확장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K팝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걸까. 한 대중문화 전문가는 “북미나 영국 등 서구의 대중음악은 개인적 성향이 두드러져서 폭력, 자살, 성관계, 마약 같은 어둡고 암울한 정신세계를 포함하는 반면, K팝은 BTS의 ‘Love yourself’ 처럼 보편적 사랑과 자기애, 꿈과 미래 등의 밝고 건전한 가치를 다룬다. 여기에 음악성까지 더해져 확산력과 잠재력이 크고 전 세계 많은 이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80주년 광복절이 있는 올해 8월이라 그런가. 다소 생뚱맞지만, K컬처가 세계로 한껏 뻗어나간 이 여름, ‘케데헌’ 시즌2 소식을 기다리며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나의 소원〉 속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입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