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엘롯기 동맹'의 가을야구 도전

입력 : 2025-08-18 18: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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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만년 하위 3개 팀 지칭 유행어
올 시즌 PS 진출 전력 보유, 흥행 이끌어
안정된 마운드·뛰어난 타격, 상승세 요인
김현수·전준우·최형우 등 베테랑 맹활약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올 시즌 KBO리그가 후반기를 맞아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반기까지 한화와 LG, 롯데가 3강 체제를 형성하며 선두권 경쟁을 펼쳤으나 후반기 들어 롯데가 8연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LG와 한화가 각각 1~2위를 질주하며 우승 문턱에 한 발짝 더 다가선 형국이다. 3위 롯데와 4위 SSG, 공동 5위에 오른 KIA, KT, NC, 8위 삼성, 9위 두산은 선두권과 8경기 이상 벌어지며 혼돈의 3~5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지난 시즌 꼴찌였던 키움은 올해도 10위로 처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시즌 폐막까지 30여 경기를 남겨 놓은 가운데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올해 KBO리그의 최대 화두는 ‘엘롯기(LG·롯데·KIA) 동맹’의 사상 최초 가을야구 진출 여부다. 한때 오랜 부진으로 만년 하위팀으로 평가받았던 엘롯기가 올 시즌 동반 포스트시즌 입성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지난해까지 43년째 엘롯기 동맹 세 팀이 가을야구 무대에 나란히 진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엘롯기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 인기 구단이어서 프로야구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팀들이다. 각각 서울, 부산, 광주라는 대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어 그만큼 극성 팬덤을 가진 팀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과거 방송 해설위원 시절 ‘엘롯기 동맹을 편애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허 총재는 그럴 때마다 “팬이 많은 구단이 잘해야 야구가 살아난다”고 해명하곤 했다. 실제로 프로야구는 KIA와 LG가 나란히 가을 야구 무대를 밟은 지난해 총 관중 1088만 7705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엘롯기는 2000년대 초반 KBO리그 만년 하위 3개 팀을 일컫는 조롱 섞인 유행어였다. 2001부터 2004년까지는 롯데가, 2005년과 2007년은 KIA가, 2006년과 2008년은 LG가 꼴찌를 차지하면서 엘롯기라는 단어가 야구 팬들에게 점차 각인되기 시작했다. 당시 엘롯기가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대한민국이 폭발한다’는 근거없는 속설까지 떠돌았다. 엘롯기는 포스트시즌에 나란히 탈락한 경우도 1982년, 1985년, 2001년, 2005년, 2007년, 2015년으로 총 6번이나 있다.

LG는 1994년 이후 2022년까지 20년이 넘게 우승을 못하다 2023년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992년 이후 무려 30년이 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봄에만 반짝해 ‘봄데’라는 오명까지 보유하고 있다. KIA는 그나마 2000년 이후 3차례나 우승을 해 체면치레는 했다.

응원하는 팀이 올해 성적이 너무 좋아 제일 신나는 건 역시 롯데 팬들이다. LG와 KIA는 각각 2023년과 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 팀은 최근 들어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반면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리그 우승 기록조차 없다.

올해 ‘반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는 엘롯기가 나란히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로는 안정된 마운드와 뛰어난 타격력을 꼽을 수 있다. LG는 요니 치리노스와 임찬규, 손주영, 송승기가 팀 내 최다승 경쟁을 벌이며 연일 승리를 챙기고 있고, KIA는 지난달 말 NC와 트레이드를 통해 우완 투수 김시훈과 한재승을 영입해 불펜을 보강했다. 롯데는 알렉 감보아와 박세웅이 선발진에서, 홍민기와 윤성빈이 불펜진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특히 롯데는 올 시즌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최근 방출하고 새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를 영입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벨라스케즈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91경기를 뛴 베테랑 투수로 빅리그 통산 38승 51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한화와 KBO리그 데뷔전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6피안타 2볼넷 5실점으로 무너졌다. 앞으로 정규시즌 동안 6~7번 정도 더 등판할 것으로 보여 이름값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엘롯기는 또 팀 OPS(출루율+장타율)와 경기당 평균 득점 등 공격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이밖에 엘롯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베테랑 선수가 팀 타선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LG 김현수(37)와 롯데 전준우(39)는 팀 내에서 결승타를 가장 많이 때렸고, 현역 최고령 타자인 KIA 최형우(41)는 리그 OPS 부문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김현수는 최근 키움전에서 시즌 10번째 결승타를 때린 뒤 “올해는 노인들이 잘되는 해인가 보다”라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엘롯기 동맹의 선전으로 올 시즌 사상 최초로 1200만 관중 돌파도 무난해 보인다. 엘롯기가 과거처럼 조롱이 아닌 영광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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