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해체 장밋빛 전망에도 영구방폐장 등 갈 길 멀다

입력 : 2025-08-20 05:10: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신산업 육성·시민 안전 병행돼야
폐기물 처분 불확실성 해소 우선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 전경. 부산일보DB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 전경. 부산일보DB

지난 6일 설계수명이 다한 고리 4호기가 멈췄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 발전을 시작해 대한민국의 원자력발전 시대를 연 이래 47년 만에 1~4호기 모두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이 중 고리 1호기는 국내 최초로 해체 결정까지 내려졌다. 부산 원전 단지는 이제 본격적인 철거 단계에 접어들었다. 노후 발전 시설을 뜯어내고 부지를 복원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부산일보〉 기획 보도 ‘해체되는 원전, 묻혀버린 검증’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654기 중 215기가 영구 정지됐는데, 이 중 25기(11%)만 해체가 완료됐다. 원전 철거는 결코 만만치 않아서 기술적, 사회적 준비가 두루 갖춰져야 한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한국에서는 고리 1호기 해체 결정 이후 철거·복원 시장 규모를 놓고 근거 없는 낙관론이 퍼졌다. ‘500조 원 시장’ 운운하며 마치 거대한 신산업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인식된 것이다. 이는 세계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서 언급된 ‘향후 25년 내 절반의 원전이 해체 대상’이라는 전망을 단순히 수치화한 것일 뿐이다. 실은 원전마다 발전 방식과 안전성 평가, 사용후핵연료 반출과 저장 시설 이송 등 변수가 제각각이다.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원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위험 요인 통제가 주요 변수다. 이 때문에 해외 원전 중 해체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장기간 지연되는 게 흔하다. 멈추는 원전은 늘지만, 해체 속도가 더딘 이유다.

고리 1호기 해체의 경우 12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구조적 지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때문이다.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소가 포화 상태에 근접했는데도 영구방폐장 계획은 답보 상태다. 해체 일정이 지연될수록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부담은 누적되고, 부지의 ‘반영구 방폐장화’ 우려는 현실이 된다. 해체 시장의 장밋빛 기대감에 들뜬 사이 정작 우리 원전 안전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은 흑연감속형 원자로 26기를 중간 단계까지만 해체하고 최대 100년을 봉인하기로 했다. 안전 담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부산시, 정치권은 지역 특화 사업으로 원전 해체 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원전 해체는 산업 육성과 시민 안전, 두 축이 병행돼야 한다. 고리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소가 2032년 포화된다는 사정 때문에 특히 그렇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처리할 영구방폐장의 입지와 설계, 추진 일정에 대한 명확한 비전 제시 없는 해체 산업 육성론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자칫 위험하다. 지난 6월 고리 1호기 해체가 승인된 뒤, 해체 과정의 안전성과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정부, 부산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방폐장 건립은 주민 수용성과 정치적 합의, 정밀한 기술 검토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장기 과제다.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신산업도 날개를 달 수 있다.

부산온나배너
영상제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